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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피터 스콧 모건 : 불안의 피난처 [책] 나는 사이보그가 되기로 했다.

팡귄 2024. 4. 19. 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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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피터 스콧 모건 : 불안의 피난처 
[책] 나는 사이보그가 되기로 했다.

 

규칙을 바꾸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하는 사람, 아무런 선택지가 없어 절망스러운 사람, 내가 선택한 길을 걸으며 외로운 사람, 일 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은 사람, 두려운 일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 추천한다.

 

 

'나는 사이보그가 되기로 했다.' 를 집어든 이유

 

 어떤 과학자의 이야기일까? 예전부터 '인간이 몸의 일부를 어디까지 바꿔야 사이보그로 분류될까?'가 궁금했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거의 모두가 사이보그가 아닐까? 요즘처럼 간단한 계산부터 왠만한 창작까지 AI에 도움을 받는 때인데 우리 뇌 일부를 이미 인공지능에게 건네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생각에 우연히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반갑게 집어 들었다. 막상 표지를 보고 조금 당황했으나 그가 괴짜 과학자며 새로운 시도를 했겠구나, 몸의 어떤 부분을 바꿨을까? 궁금해하면서 책을 열었다.

뜻밖에도 예상과 다르게  그의 인생은 너무나 흥미롭고 절절했다.

(디자이너에게는 미안하지만 한국판의 표지가 매우 아쉽다. 피터 스콧이 확실히 한국판까지 감수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피터 본인이 영국판만큼은 큰 심혈을 기울였으리라. 영국판의 핵심은 간단한 피터 '2.0'이라는 제목, 그리고 몸 속으로 펼쳐진 우주다. 2.0이라는 표현은 참 매력있다. 정확히 그가 말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감없이 그의 얼굴을 담은 중국판 표지도 괜찮다.)

음악을 함께 듣고 싶다면, 다 읽을 즈음에 퀸의 love of my life를 추천하고 싶다. 가사 딱 맞다.

 

 

예상대로 특별한 사람인가?

 

 인생의 시작은 매우 괜찮은 상황이었다. 영국의 기득권 계층에서 태어난 그는 아주 유복한 가정환경에 다양하고 질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친척까지도 대대로 부유한 집안이며 학구적인 그가 연구를 펼치며, 유유자적 살 수 있었을 그의 어린시절은 부러울만 했다.

 그러나 동시에 그가 선택한, 혹은 그에게 주어진 삶이 드러난다. 기득권 계층 답게 매우 보수적인 집안에서는 도저히 용납하지 못 할 동성애자로 자신의 삶을 찾아가며, '탄탄대로 펼쳐진 풍요로운 앞날'을 말그대로 박차고 나온 인물이며 사회나 기업에 숨겨진 암묵적인 규칙들을 찾아 초고속으로 승진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자신이 직접 쓴 소설처럼 만났으며, 영국 최초 동성 결혼식을 올린 인물이자,

루게릭진단을 받고도 자신의 신체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여, 그 강력한 절망을 이겨낸 인물이기도 한다.

압축적으로 설명한다고 적어봤는데 쉽지가 않다. 이렇게 표현하기에 아쉬운 인물이다.

또 절망을 이겨내기 위해 '사이보그가 되는 길을 선택했다-혁신적이고 훌륭하다'가 이책의 핵심이 아니다.

 

 

그래서 성공인가? 실패인가? 


그때 나의 평생의 동반자인 강렬한 호기심이 당당하게 코를 디밀었다.

"그러면 도대체 무슨 문제죠?"

뇌신경과 의사는 뇌 사진을 보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멋진 뇌를 가지고 계시네요." 의사는 그것이 자기 공이라도 되는 양 자랑스럽게 말했다.

"보시다 시피.... 두개골 내부는 ... 깨끗합니다."

저서 표지에 추천사로 실을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칭찬의 뜻임은 분명했다.


  책에서 그는 1인칭으로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책은 피터가 루게릭 판정을 받고 이후에 쓰기 시작했다. 책을 읽는 중에 나의 얄구지고 질 낮은 취향이 계속 작동했다. 그가 직접 '자신이 하는 일마다 엄청나며 대단'하고, '혁명이나 반혁'이라는 표현을 반복하는 것을 보며 자아도취가 심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가 쓴 문장들의 표현이 솔직하고 공감이 가서, 또 재미있어서 계속 읽을 수밖에 없었다. 소리내어 웃음이 나는 문장도 많았다. 그리고 그가 겪은 인생의 파고를 내가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가 수다스럽게 글을 적은 것이 다행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장까지 읽고 보니 그가 한 일은 정말로 모두 엄청나고 대단했으며 혁명이 맞았다. 

 루게릭 병은 천천히 자신의 몸에 갖히는 내 기준으로 '개인이 겪는 가장 절망스러운 병'이다. 그럼에도 그는 한결같이 자신있고 당차며 유머있는 말투로 자신의 삶을 멋지게 전해준다. 

 그러나 문장 사이마다, 페이지의 작은 빈틈에서 그가 얼마나 두렵고 무서웠는지가 갑작스럽게 새어 나올 때가 있었다. 나는 그걸 최대한 못 본 척하려고 노력했다. 그는 절대로 동정을 원하지 않았을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무너지는 순간

 

굉장히 일관되고 자신있는 문장들 사이에 그가 아주 솔직하게 자신의 절망을 표현하는 문장들을 만나면, 글자 하나까지도 군더더기 없이 딱 맞추어 짜인듯이 슬픔이 가득했다. 번역한 분이 단어를 잘 고른 것들도 많았다.

 죽음을 그대로 천천히 맞이하는 게 아니라, 몸의 일부를 기계로 대체하고, 아바타를 만들어 감정을 전하는 기술을 이용하는 것, 의사들이 안내하는 루게릭환자의 운명을 순응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무도 시도하지 않은 해결책을 선택하는 것, 끈질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보통 사람보다 대단한 사람이 맞지만, 그의 반려자와 그가 겪은 고민들은 매우 현실적이고 공감이 갔다.


"네가 아직 건강할 때 마지막 몇 번의 여름을 우리 둘이서 함께 즐기는 게 어때? 이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아. 아무도 고마워하지 않을 일에 모든 걸 바쳐가며 허세를 부리느라 남은 에너지와 우리가 함께 보낼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내 삶의 특권을 지탱해온 틀이 하염없이 무너져 내렸다.'

그날 밤 나는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다. 밤새도록 머릿속으로 그 일을 처리하고, 재평가하고, 폐기하고, 고뇌했다.


 

 

 숨길 수 없는 것

 

 그가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어린 학생시절에 끔찍한 비난과 벌을 받던 날, 한편으로는 왜 그 대단한 특권들을 포기하면서 동성애자가 되었을까, 숨길 수는 없었을까? 같은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내 알게 되었다. 숨길 수 없는 것이다.

 그가 루게릭 병에 걸린 것을 숨길 수 없고 숨길 필요가 없듯이 그냥 그 자체가 그를 이루기 때문인 것이다. 루게릭 병을 맞이하는 결말을 알기 때문에, 그가 점차 이상한 증상들을 발견할 때에 몰입이 되었다. 나라면 어떻게 했을까?

 우리는 몸에 이상한 증상이 나타났을 때 어떻게 행동하는가? 그래, 인터넷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는 거다. 그 역시 의사만큼 전문가가 되어 병원에 다녔으며, 온갖 검사를 받았다. 그는 꽤 지독하게 공부한 덕에 자신의 병명을 거의 예측하며 좁혀나갔다. 그리고 결국은 그가 루게릭이라는 질환을 판정받는 순간까지, 글자들이 속절없이 달려갔다.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참, 이책은 그러던 그가 단지 몸 속에 기계를 넣는다는 과정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그런 책이 나올 수 없다. 아래와 같은 질문에 답을 해야만 하니 말이다.

 

아직은 멀쩡한 내 목소리를 온전히 잃는 대신, 자가호흡을 유지할 수 있는 수술을 하는 게 맞을까?

현재 멀쩡한 후두를 제거하고, 기계로 대체하면 병이 악화된 이후의 자가호흡을 도울 수 있다. 다만 아직은 내 목소리로 말할 수 있는 목을 도려내 더이상 내 목소리로 말하지 못하는 순간을 직접 앞당기면서 말이다. 

 

그럼 내 목소리로 마지막 말을 하는 날, 어떤 말을 할 것인가?

*피터가 선택한 마지막 문장은 책에도 나오는데, 책을 쓰는 동안 함께 촬영한 다큐멘터리에도 그대로 그 순간이 등장한다. 42:10부터 보면 된다. 그가 책으로 서술한 장면들을 영상으로도 볼 수 있는 게 아주 멋지다. https://www.youtube.com/watch?v=raC86BUFVJw

 

2년 밖에 안 남았다는 여생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으로 가득 채우기보다

기업들을 설득하고, 책을 쓰고, 기술을 개발하는 것에 보내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

그가 AI가 되면 늙어가는 그의 배우자는 그를 받아들여야할까?

그가 신체가 죽으면, 가상화된 인물은 누구인가?

사이보그가 될때 나의 반려자를 설득하는 과정이 필요할까?

 

 그는 일관되게 '루게릭 환자들을 죽이는 것은 병이 아니라 그 병이 빼앗아갈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것'을 전한다. 

 목소리를 잃는 날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 그는 스스로가 작별인사에 어색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그러고 보면이미 그는 수많은 마지막을 겪었기 때문이다.

 루게릭 병은 하나씩 그에게 마지막을 만들었다. 마지막 저녁식사, 마지막으로 걸은 산책, 마지막으로 만지는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 목소리를 잃는 것 역시 수많은 마지막 작별인사 중 하나다.

 

용기를 이어갈 수 없는 순간

 

이야기는 영화같이 전폭적인 지원과 희망으로 가득차있지만은 않다.

그와 그의 반려자가 감정적으로 무너지는 장면이 있다.

용기를 끈질기게 이어가기 어려운 순간을 맞이하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도 어느 날, 그를 지원하기로 했던 기업, 전문가들이 연달아 배신을 하는 순간이다. 어떻게 해야할까?

 

 

20년 뒤의 그가 그린 결말

 

책의 마지막 장은 20년 후를 그린 그의 상상으로 이어진다.

실제 그는 진단 받은 2년이 아니라 5년을 살았다.

나는 책의 중간을 읽을 때쯤 우연히 이 희망차고, 멋지며 용기있는 사람이 이미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알았다.

그럼에도 책은 그가 살아있을 적 쓴 것으로, 희망이 가득하다.

'가상 세계에서 그의 악화된 몸을 대체하고 살아가는 행복한 미래'를 그리며, 끝내 자신의 몸은 완전히 죽지만 AI로 남아 사랑하는 그의 남편과 만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몽환적이면서 아름다운 장면었다.

그래서 책을 덮고, 지금까지 내가 소설을 읽은 건 아닌가 헷갈렸다.

 

그럼 결국 실패한 것인가?

 

계속 떠올려보았다. 결국 그는 루게릭 환자의 평균수명이라는 5년을 넘기지 못했으므로 실패한 것인가?

 

진단 받은 수명보다 오래 사는 것이 그가 사이보그가 된 목표였나?

아니라고 생각한다. 몸에 갇히게 될 공포와 두려움, 다시 소수가 되어 사람들로부터 외면받거나

자신의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질 수도 없는 그런 절망을 이겨내려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그렇다면, 그는 목표를 충분히 이룬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그가 그냥 10년만큼 더 살았으면 좋았을 것 같다.

아니면 5년을 살았어도 좋으니 대신 2017년이 아닌 올해나 작년에 판정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그때보다는 지금이 더 낫지 않을까 짧은 지식으로 생각해본다. 오픈 AI에 생성 AI가 많은 기술적 한계에대한 편견을 버리고 화제가 된 지금이면, 기업이나 의료계의 시각을 많이 돌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는 더 많은 지원을 받았을 것 같고, 더 이루었을 것 같다.

 

아니다. 그가 살았으면, 그냥 오래 오래 살았으면 좋았을텐데 싶다.

이책은 우리에게 불안의 피난처가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게 무엇인지 알려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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