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놀이
올해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취미가 뭐냐고 물어보았다.
절반 정도는 "그럴 시간이 없어요." "여유가 없어서." "쉬기에도 바빠서"라는 대답을 주었고, 이게 아니라면 주로 수영, 독서, 뜨개질, 전시관람, 영화감상 등이 반복해서 등장했다. 취미를 물으면 대체적으로 명사형으로 답을 주어서 내가 이어서 더 질문을 던지고는 했다.
그러나 '앞으로 뭘 하고 놀아야 하는가?' , '무엇을 좋아하는가?' 에 대한 답을 찾고 싶었는데, 아쉬움이 있었다. 어디서 즐거움을 찾아야하는지 고민을 시작했다.
직접 놀기
다른 사람으로부터 즐거운 것에 대해 듣는 것에 반드시 한계가 있었다. 내가 직접 놀아보아야 맞다는 생각에 연초부터 이것 저것 다양한 공간과 활동들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그와중에 발견하는 참 재미있는 공간들이 있다.
그 공간들을 모아보고는 있지만 교육이나 체험이 그 시기에만 운영되고 끝나는 경우가 많아, 공유를 해도 다 지난 정보가 될 것 같아 포스팅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종종 신기하거나 재밌는 공간이 있다.
놀이 라는 카테고리
[놀이]라는 카테고리로 올려 보련다. 즐거움을 주는 공간이나 활동 정보를 나누면 좋겠다.
인상적인 답변을 준 사람
참, 3월 쯤에 '취미'나 '놀이'가 인상적인 사람이 있었다.
1. 순간의 소리를 기록하기
이분은 아주 신이 나서 어느 날 있던 자신의 일화를 이야기해주었다.
어느 날, 출근을 하는데, 딱! 바람 소리가 달라진 것 같은 거에요. '달라졌어!' 그래서 일단 멈춰서서 얼른 핸드폰 녹음앱을 켰어요. 그리고 출근길에서 멈춰서 재빨리 그 소리를 녹음했어요. (소리를 켜주심) 이 소리에요. 뭐가 들리세요? 저는 계절이 바뀌는 때마다 또 녹음을 합니다. 계절마다 바람 소리가 다르고, 발자국 소리가 다른 거 아세요? 저는 이렇게 해마다 모아놓은 소리가 엄청 많아요.
이사람이야말로 내가 살면서 본 '최고로 행복한 기록왕'이라고 하겠다. 기록을 자주 한다는 것보다 중요한 점은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는 것들을 소중하게 보고, 사랑스럽게 여기어 기록한다는 점이다. 소리 말고도 다양한 형태로 기록을 즐기는데 이분은 자신의 기록들을 소개하는 동안 목소리에 즐거움이 묻어났다.
2. 자전거 '조금' 타기
저는 자전거로 20분 정도 동네를 살짝 돌고 옵니다. 주변에서 취미가 '자전거 타기'라고 하면, 항상 '자전거가 얼마짜리 타요?' 하는데 저는 자전거 장비도 잘 모르고 관심이 없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취미를 위해 자전거를 구입할 계획이 없어요. 자전거를 빌려서 딱 이만큼만 짧게 타는 게 너무 좋거든요. 자전거 타고 멀리 다녀오고 싶은 것도 아니고, 여기 동네를 천천히 짧게 돌면 아주 재밌거든요. 자전거 '조금' 타기가 취미입니다.
3. 오려모으는 사람
'내 행성의 지도'라는 나만의 취향을 담은 노트를 만드는 사람이다.
늦은 밤에 센치해졌을 때 그때 해야합니다. 우선 침대에서 일어나 곁에 두었던 잡지를 넘겨봅니다. 이때 잡지는 물론 신간도 아니고, 애초에 처음부터 비싼 잡지가 아닙니다. 마침 친구들도 제 취미를 알아서 만날 때마다 철지난 잡지를 선물로 줘요. 일단 잡지를 펴고 넘겨보다가 마음에 드는 이미지를 발견하면, 노트에 조합을 해서 붙입니다. 이 노트를 때때로 넘겨봅니다. 아주 마음에 드는 것들이 모여있습니다.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놀이
저런 답변들을 접하고 나니 더욱 더 '나를 위한 놀이 찾기'가 길고 험난해진다. 놀이는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었고, 어떤 것이든 그 사람에게 놀이가 되는 순간 몹시 구체적이고 개인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즐기고 좋아하는 것은 수영, 영화감상입니다.' 라고 떠올리면 복잡할 것은 없다.
하지만 사실 내가 수영을 즐거워한다는 것은 '수영하고 조금 느긋하게, 개운하게 씻은 다음 약간 욱신거리는 다리로 걸어 나오는 길에 상쾌하게 아이스커피 마시기'로 구체화해야하기 때문이다.
뭐 성가시게 느껴지긴 하지만 해볼만한 가치가 있다. 나중에 취미나 놀이를 찾아 방황하는 사람에게 열댓가지는 넘는 리스트를 전해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