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내전, 재미있는 입담으로 전하는 사회의 민낯
목차
1. 이 책을 읽기 전에
2. 사회 초년생은 더욱이 읽도록
3. 분쟁 조정에 익숙한가?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열리면 마음이 답답한 이유
1. 이 책을 읽기 전에
저자의 입담이 보통이 아니다. 맨 앞 추천사를 써준 친구 칭찬이 과장이 아니다.
무엇보다 현직 검사가 쓴 사회의 민낯이 담겨 사회학, 심리학, 행동 경제학의 진짜 실무 적용을 살펴보는 듯다. '이렇게 추하구나. 나는 순진한 것이 아니라, 무지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동안 큰 빚이 없이 살아가는 것은 단지 이런 사기꾼을 만나지 않은 천운이 따랐을 뿐이구나.'라는 생각 마저 든다. 혀를 내두르는 사기꾼들과 범죄자들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웃음이 나면서도, 철렁한 문장들이 가득하다. 그들을 만났으면 나도 별 수 없었을 것이다. 사필귀정이라든가, 옳은 것은 반드시 이긴다거나 하는 교과서 같은 생각을 마음에 품고 살 수 있는 것도 큰 복이다.
문장이 재밌어서 소설책처럼 놓을 수 없는데, 전하는 이야기는 무겁고 슬프다. 참고로 저자의 행보를 보니 기대한 바와 같이 역시 법조계를 박차고 나가 정치판에 들어가서는, 본인의 뜻한 바를 행동으로 옮기며 나아가고 있다. 작가의 근황이 궁금해 검색창에 이름을 넣으니 최근 포스팅 하나 없이 조용히 사라져있을 사람이 아니다.
물론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교보문고 서평 중에 있는 말 맞다나 본인의 책에 담으 몇몇 예리한 비판들이 곧 자기 예언을 한 셈인가 싶어 씁쓸하다. 그렇게나 분명하고, 정확하게 옳은 생각을 마음에 갖고 있어도, 잊어버리기 쉬운가보다. 지금의 저자가 가는 행보를 떼어놓고 읽을 수 있다면 좋은 책이다.
노트를 정리할 겸 옮겨본다. 베스트셀러였던지가 꽤 되어 이미 읽은 사람들이 많겠다.
2. 사회 초년생은 더욱이 읽도록
총 4부로 이루어진 이야기에서 1부의 몇 장만 넘기다보면 이책을 빌려가야겠다는 확신이 든다. 이책을 발견한 것은 전쟁기념관 도서관이다. 전쟁기념관에 도서관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는데, 그 안에 전쟁과 역사가 주제가 아닌 책들도 여럿 있다는 게 신기했다. 앞 장까지는 웃음이 나서 숨죽여 웃게 된다. 그러나 103쪽을 넘어가며 사연있는 사람처럼 훌쩍거리게 되었다.
사연이나 일화가 재밌어 모두 기억하고 싶은 욕심이 든다. 이럴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믿기지 않는 추악한 이야기도 있다. 오늘 다시 목차를 살펴보면서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려 보았다.
부담없는 에세이같은 거니 읽어보라며 고등학생들에게 권해보고 싶다. 학교에서는 차마 무전유죄라고 말할 수도 없고, 약한 사람, 힘든 사람, 선의를 믿는 사람들이야말로 사기꾼이 등쳐먹기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가르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도 지긋한, 살만큼 산 할머니가 이런 사기를 칠리 없다는 피해자를 보며 저자가 덧붙이는 말이 재밌다.
'헌 가마니에 쌀이 더 들어간다.'
각 부의 느낌을 나눠보겠다.
1부. 사기 공화국 풍경은 이야기 중 어느 하나도 빼놓을 것이 없다. 웃음이 나다가 눈물이 나기도 하고 분하고 속이 답답한 구간이다. 첫 전설적인 사기꾼 할머니의 이야기는 드라마에 그대로 실려 시청률에 이바지했다.
2부. 에서 검찰이 보지 못한 그의 진심이라는 이야기는 마음에 오래 남는다. 공기청정기의 엔지니어가 시위에 나선 이야기는 내가 분명 어디선가 들었던 사건이었다. 이렇게 일이 풀려나갔구나하는 마음에 1부에 뒤집어진 속이 그나마 위안이 되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검찰이 진심을 봐주어야만 진심으로 인정되는 현실이 무섭기도 했다. 검찰이 개인의 옳고 그름을 정해주는 사회가 우리가 바라는 것이었나? 숨이 막혔다.
클라이막스는 산도박장 이야기다. 단속되어 다같이 잡혀가는 버스 안에서도 서로 자동차 번호판의 숫자로 내기를 하더라는 이야기는 단연 압권이다.
3부. 검사의 사생활은 저자를 파악할 만한 단서를 주는 구간이다. 조금 뜬금없지만 책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도 한다. 그리고 저자가 만난 귀인이 등장한다. 길거리의 노숙자와 대화를 섞어보는 것이 두렵고 불편한 나에게 귀인이 된 노숙자와의 일화는 신기하고 인상깊었다.
4부. 는 책에 반드시 있어야할 부분이다. 3부까지로 책이 끝났더라면 아쉬움이 컸을 것이다. 잔뜩 문제와 고민만 던지고 사라지는 책들도 많다. 그러나 4부에서는 저자의 또렷한 생각과 근거가 드러난다.
3. 분쟁 조정에 익숙한가? 학교폭력대책위원회가 열리면 마음이 답답한 이유
책을 넘기다 말고 멍하니 생각을 가장 많이 한 구간이다.
재판이 진행되면 피해자와 가해자가 만나는 기회가 정말 없다. 심지어 피해자라고 하여도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부분이 적다.
몇년 전에 안타까운 일로 무고하게 가해자가 됬던 이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직 잘못이 성립하지도 않았으나 피해자의 고소대로 재판이 진행되었고, 가해자는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단 한 번도 얼굴도 모르는 피해자를 만날 수 없었다.
오해를 풀고 사과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끝내 그는 단 한번의 기회도얻지 못했다.
지난 달 이웃집과의 갈등이 생겼었다. 갈등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에 협조는 커녕 연락을 피하는 이웃집에 대해 내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법적 해결방법이었다. 어쩌면 누구라도 그럴테다. '법'이 해결해주리라 믿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우연히 알게 된 제도가 있다.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이웃간 분쟁 조정 위원회다. 전화를 걸었다.
무엇을 기대했던 걸까? 나는 역시나 '법'을 기대한 것이다. 그러나 분쟁 조정 위원회에는 이웃의 참여를 강제할 '법'이 없고, 법률 전문가와 상담가가 함께 자리해 대화를 도울 뿐이라는 것이다. 당시의 내생각은 '도울 뿐이다.'라는 실망감으로 가득했다. '뭐하러 만든 거지?'
그러나 이 책의 4부를 읽으면서 많은 반성을 했다. 법이 누가 잘못한 사람인지 정해주면 그것으로 정말 갈등이 해결될까?
피해자가 신고를 하면 학교에서는 피해자와 가해자를 즉시 분리할 수 있다. 분리를 통해 둘의 갈등을 조정할 기회를 없애는 방법이 과연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옳은가? 저학년 아이들이 친구들과 갈등이 생기면 ’학폭에 신고할거야.’가 기본값이 되어버리고 부모의 감정이 우선되어 정작 아이들은 화해하고 싶은데 학폭위는 이어지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있었다. 학폭위가 필요없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잘못이 있으며 시시비비를 가릴 일이 아닌, 갈등을 조정해야하는 순간들 마저 대화를 막고, 신고하는 것이 과연 옳은가 묻는 것이다.
대화를 저자의 말처럼 때로는 두 사람의 갈등에서 잘못의 지분이 48과 52로 놓여있어도 법은 52의 지분을 가진 사람이 잘못이라고 판결을 내린다. 세상에 잘못의 지분이 100과 0으로 나뉘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이분법적인 판결이 갈등의 해결에 최선이 아니기에 재판이 끝나도 마음이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로의 잘못을 알고 대화로 해결하며 조정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책에서 제시하는 미국 일부 주에서 시행되고 있는 좋은 사례들은 그제도가 어떻게 운영될 수 있고 어떤 좋은 결과를 가져올지 기대감을 실어준다. 심지어는 그 사례의 일부를 학교 현장에 데려오고 싶었다. 누가 잘못인지 정하고 처벌하는 학교도 필요하지만, 둘의 갈등을 나누게 돕고 조정해주는 학교도 필요하다. (비현실적인 사례들이 아니다. 충분히 현실적인 사례들이 등장한다.)
단, 미성년자라는 법망을 피해가는,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학교폭력가해자들에게는 분명한 처벌을 강조하고 있다. 가해자를 감싸려는 게 저자의 논지가 아니다.
국회의원이나 그들의 비서관을 자주 만나는 일을 했던 지인은 항상 세상이 얼마나 썩었는지 내가 모른다고 말했다. 아직 보지 못해서 그렇게 순진하게 정의를 믿는다고 말하고는 했다. 이책을 읽으니 이해가 간다. 다만 책을 쓰던 당시의 저자처럼 틀린 것을 말하려고 책을 쓰는 이도 있고, 나같은 순진한 사람도 있는 걸 보면, 적어도 세상에 10% 정도의 영토에는 진심이 있으리라 믿는다.
4부에 관한 생각은 다른 포스팅으로 다시 구체화하여 정리해봐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