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전담 교사되기 :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 설정
드디어 때가 왔다. 초등교사로 10여 년이 넘는 동안 교과 전담의 기회 자체가 적었던 탓도 있지만, 드디어 올해 '언젠가는 하게 될지도' 였던 영어 전담 교사가 되었다.
* 물론 영어만 맡은 것은 아니라 총 세 과목이다. (학교 방침이 모든 교과교사가 공평하게 세 과목씩 맡자가 암묵적인 룰) 영어에 보너스 선물로 정말 좋아하는 실과와 미술을 함께 맡아서 흥이 나면서도, 긴장이 되는 한 해가 되겠다.
'영어수업을 한 번 해본 사람은 계속 하게 된다', '반복적인 루틴이 있다', '게임활동이 많아서 어렵지 않다.'는이야기를 귀가 아프도록 들어왔다. 다른 많은 교과들과 달리 어떻게 영어수업은 루틴이 정해지는 걸까? 같은 언어를 지도하는 국어수업과는 어떤 점이 다를까? 학생별 수준차이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
수업 자체에 대한 궁금함이 끝이 없고 또 원어민 교사와는 어떻게 수업을 연결해가는지 고민이 끊이지 않는다. 나처럼 영어전담을 처음 맡은 사람들이 다 그러할테니 고민하고 찾아본 과정을 적어 나누어보려 한다.
앞으로의 (예상되는) 포스팅 목차
1.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 설정 (이번 포스팅)
2. 학년별 내 수업의 목표 설정
3. 자료 탐색 시작과 방향
4. 꼭 들어볼만한 연수 추천
1.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 설정
일은 일이고, 내 삶은 따로 있다고는 하지만 수업연구를 할 때, 항상 연장선상에 내 삶을 놓고 이 시간이 여기에 어떤 기여를 할까 고민하고는 한다. 사실 일도 내 삶이 아닐 수 없다.
수학은 아무리 초등수준이라 하더라도 그 간단해 보이는 개념을 깊게 파다보면, 왜 수학자들이 그렇게 수학을 사랑하는지 이해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국어는 우리 말의 재미에 매번 감탄하게 하고 내가 쓴 글을 돌아보는 시간을 주었다. 미술은 말할 것도 없이 매 시간이 즐겁다. 다양한 작품을 보는 재미가 매번 수업을 기다리게 한다. 사회! 역사가 얼마나 재밌는 지 문화재를 빠져 고구려벽화를 미친듯이 찾았던 해도 있었다.
영어 수업은 내 삶에 도움을 주나?
영어야말로 노골적으로 교사 개인의 삶에 도움이 되는 과목이라 생각한다. 물론 역시나 단어나 표현의 수준은 너무나 간단하다. 그러나 영어는 초등교육을 위한 '도구'이며 다른 문화를 이해하고 상호작용과 소통을 익히는 측면으로 수업을 생각해보면 간단하지 않다. 언어지식을 키우는 게 아닌 소통과 이해 역량을 키우는 것이 주된 목표라면 영어 문장과 단어를 전하는 데에 끝나지 않는다.
그런데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른 분들의 수업을 살펴보고 교과서와 지도서를 보다보니 '소통', '문화'라는 단어가 반복되었는데, 정작 나는 다른 사람과 어떻게 소통하고, 어떤 감정을 나누고 싶어했던가? 다른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았던가? 이상하게 이 부분이 오래 마음에 남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다른 문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른 사람과 어떤 감정을 나누며 소통해왔는가?
그리고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 방식을 고수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이 부분에서 누구라도 개인적인 목표를 설정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올해의 경험을 통해 내가 다른 문화를 받아들이는 방식을 조금 더 확장하고, 다른 언어 사용자와 생각과 감정을 나누는 깊이를 늘리고 싶다는 방향을 세웠다. 이전에는 그러지 않았지만 앞으로 그러지 않으리라는 법도 없다. 내가 희망하는 상대는 여행에서 만나는, 아주 휘발성 강한 관계의 외국인이다. 앞으로 여행을 지금과는 또 다르게 다닐 것 같다는 기대감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목표를 설정하기 전에 해야할 것이 있다. 진단평가, 출발점 진단이다.
최근 너구리쌤에게 추천받은 책 로버트 파우저가 지은 '외국어 학습담', 그리고 며칠 전 들었던 기가 막힌 연수에서 공통점으로 말하는 것이 있다. 지금의 내 상황을 정확하게 진단하라는 것이다. 현재 내 수준이나 상황은 외면하고 앞으로 달려나가기부터 시작하기 쉽지만 말이다. 외국어 학습담은 참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영어를 그동안 어떻게 만나왔듯, 다시 영어를 만나게 해주는 책이다.
그리고 아래 성찰 양식은 이 책에서 제안하는 양식이다. 토익 몇 점이라는 목표보다 더 자세하고 피할 수 없이 낱낱히 내 현 상황을 파헤쳐주는 느낌이다. 여기서 내가 예상보다 오래걸린 부분은 학습 동기, 이유 부분이다.
영어를 왜 배우려고 하는가?
영어는 국제 공용어니까? 아니 조금 더 구체적인 학습 동기를 적어야한다. 영어 전담교사가 됬으니까? 원어민 교사랑 말할 때 더 깊이 소통하기 위해서인가? 외국인 친구를 사귈 수 있으니까?
하나씩 짚어보니 전부 마음에 들지 않는다. 오래 지속될 동기가 아니다. 전담교사도 일 년 후에는 그만일지도 모른다. 또 원어민 교사가 영어 모국어 사용자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내 생각을 깊게 소통하고 싶은 상대가 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상대방 역시 그럴 수 있다.) 외국인 친구라는 것도, 나는 친구를 사귀는 데에도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성격상 많은 친구를 가진 편이 아니다. 친구의 폭이 넓어질 수 있다는 기대는 되지만, 친구만들기를 동기에 넣는 것은 설득이 되지 않는다.
성격에 맞는 동기를 떠올려보건데, '앞으로의 여행은 그동안 다녀온 여행과는 다른 여행이 되도록 하자.'에서 시작하니 좋다. 여행을 즐겨다녀왔고, 앞으로도 계속 여행을 가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나의 시각과 나의 문화를 간직하며 발견하는 여행들이었다.
그런데 아무리 나의 시각과 문화를 간직하며, 다른 사람과 상호작용 없는 여행을 하더라도 꼭 한 두번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인연이 생긴다. 소극적인 성격인 나도 말을 걸어야하거나 말을 걸고 싶어지는 순간이 있다. 게임으로 치면 '말을 걸어야 하는 NPC'와 '아무런 상호작용이 불가능한 NPC'와 같다.
대만에 갔을때 공원의 꽃나무가 너무 이뻐서 동생이랑 쉼없이 사진을 찍고 있던 때였다. 너무나 인상좋고 밝은 표정으로 한 할아버지가 다가오셨다. 애석하게도 나는 '피아오량~'이라는 단어만 알아들었다. 서로 국적도 나이도 살아온 문화도 다르지만, 그순간 만큼은 꽃나무에 대해서 함께 감탄하고 이야기할 수 있었는데, 답답하게도 웃어보이기만 하고 돌아올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순간은 누구에게나 한 번 쯤은 있었을 것이다. 나 역시도 다섯 여개는 금방 더 떠오른다. 나도 진심으로 내 생각과 감정을 나누고 싶었는데, 표현할 수 있는 단어는 몹시 이분법적이거나 직설적인 단어들뿐이었다.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직후에는 언어 학습에 대한 욕구가 불타오르곤 한다. 그런데 이렇게 피어난 학습욕구는 일상으로 돌아와서 점점 사라져간다. 이를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조금 더 구체적인 상상과 계획이 필요하다는 결론이 난다.
아주 구체적이고 흥미롭고 일어날 수 있는, 곧 일어날 만한 상상이 필요하다.
여행 일자를 잡기로 했다. 두 번째로는 내가 나누고 싶은 생각과 감정, 이야깃거리를 떠올려본다. 어디에 가서 어떤 이야기들을 나누고 싶은지 상상해보기로 했다. 그러고 보니 여행 전에 뭘 보고올지 생각하고는 했는데 여행지에서 뭘 말하고 올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뭘 듣고 올지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내가 궁금한 것들, 다른 사람들에게 얻을 수 있는 생각들을 기대해본다. 지금까지 다녀온 여행과는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될 것 같다. 이제 좀 정리가 된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목표를 설정하니, 언어 공부도 영어 전담 수업도 내 일상이 되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