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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예술/예술

비난을 자본으로 삼는 작가, 데이미언 허스트 국립현대미술관 2026 관람후기

by 팡귄 2026. 3.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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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된지 일주일이 된 따끈따끈한 데이미언 허스트의 전시를 보고 와서, 얼른 예술 카테고리의 글을 넣어보려고 하다가 고민이 들었다. 사실 이 작가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도 좋아하지 않았지만, 역시나 이번에 보고 와서도 (논란의 아이콘답게) 불쾌함이 강하게 닿았기 때문이다. 어떤 점에서는 사려깊고 섬세했고 예리했지만, 어떤 점에서는 눈을 가리고 모르는 척하고 있다는 뻔뻔한 느낌이 들었다. 그점은 조금 있다가 적어보겠다. 이렇게 비난해도 되나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작품 한 가지는 확실히 문제가 있었다.


*전시를 보러 가기 전 참고
1. 온라인 예매를 먼저 확인하고 갈 것(간혹 표가 남아있기도)
2. 온라인 매진이어도 관람하려는 정시부터 현장 예매(1인 당 최대 4매)가 가능함.
3. 매시인지 모르겠으나 오후 1시 10분, 40분, 3시 10분, 40분으로 시간대별 10분, 40분에 도슨트 투어 있음.
4. 오디오 가이드 및 브로슈어 : https://www.mmca.go.kr/exhibitions/exhibitionsDetail.do?exhFlag=2&exhId=202601060002023


목차
1.평점 
2.인기있는 전시,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
3.일상에서 찾은 예리한 죽음과 기억의 순간
4.문제의 작품, 예술을 위한 면죄부
5.마티스를 좋아하는 그의 멋진 회화 작품

 

평점 

 시작부터 솔직하게 전시 후기에 평점을 매긴다면, 론 뮤익보다는 아쉽다는 게 내 의견이다. 물론 작품 설명을 하나하나 읽고 이 전시를 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했으리라 감사하게 생각한다.
평점 : ★ ★ ★ ☆ 
https://pangguinland.tistory.com/392
 론 뮤익 전시 후기를 지난 포스팅에 남겼었는데, 전시 시작에 놓인 문학과 연계된 코너, 그리고 전시에서 일관되게 전하는 메시지와 작품 간 간격들까지 충분히 론 뮤익을 모르는 사람도 이 작가를 이해하고 즐기기에 좋았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찍은 비디오 작품이 전시의 끝에 배치되어서, 전시를 완벽하게 마무리해주었다. 반면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는 작품은 더 많았는데 작품 배치가 조금 아쉬웠다. 어쩌면 구역을 조금 더 분할했어야하는 건가 싶다.
 마치 론 뮤익 전시는 원본 종이책으로 읽어서 장마다 구분이 제때에 된 느낌이었다면, 데이미언 허스트 전시는 전자책으로 읽어서 장마다 색깔있는 표지나 여유있는 구분, 때에 맞는 구분을 놓치지 못하고 읽은 책 같았다. 

정말 이렇게 많은 인파는 처음 본다.

 

인기있는 전시, 현대 미술을 즐기는 방식

 엄청난 인기의 전시 답게 온라인 예매는 평일 일부를 배고는 다음주 주말까지 꽉 차있으며, 내가 방문한 금요일 오후 3시 역시 이미 매진된지 오래였다. 현장 예매가 가능하다고 해서 줄을 서기는 했는데, 미술관 내부를 돌아서까지 줄을 서야 했다. 그나마도 앞에서 발권을 많이 해버리면 (1인당 최대 4매) 잘릴 수 있다고 해서 당황스러웠다. 그런 줄도 모르고 2시 반에 줄선 사람들을 보며 한가하게 커피를 한 잔하고 온 나를 자책했다... 결론은 들어갈 수 있었다. 정확히 3시부터 현장 판매를 시작했다.
 그런데, 들어가서도 줄을 선다. 입장하고 나서는 작품을 보는 데에는 조금 여유가 있어 괜찮았다. 내부에 들어가면 줄을 서지 않아도 된다고 안내는 하나, 작품 설명을 읽거나 가까이 보려면 무리랑 그대로 움직일 필요도 있었다.

죽은 상어의 입을 벌리게 한 다음 넣은 것이겠지? (조사해보니 그렇다고 한다..)

 상어 작품은 역시나 인기가 많아서 인증샷을 찍는 사람이 제일 많았다. 죽음이라는 주제를 죽음
으로 보여주는 작품들이 많아 오랜 생각과 공감을 끌어내기 보다는 평면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충격을 주고, 의외성이나 낯설음, 겁을 주는 작품들 같았다. 잘린 소의 머리와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역겨운 냄새, 구더기와 파리를 본 사람들은 조용히 지나칠 수 없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이 놀라는 소리와 표정, 멈춰서는 걸음들, 일행과 나누는 말소리로 역동적인 감상들이 일어났다. 흥미롭게 소비되기에 아주 적절한 작품들이었다. 동생 말 맞다나 작품 속에서 사진을 찍으면서 미술을 즐기는 방식은 내 생각에는 그런대로 잘 자리잡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근데 작가는 흥미로움만 의도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나비들의 날개로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

 

일상에서 찾은 예리한 죽음과 기억의 순간

 그의 작품은 노골적이어서 은유나 비유도 없으며, 감상하는 사람이 자신의 기억에서든 경험에서든, 머릿 속에서는 죽음을 끌어오려는 노력조차 애초에 할 필요 없어 보였다. 포장지 없이 냅다 죽음을 던진 느낌이다.
 다만, 초기작 코너에서 실제 허스트의 옆집에 살던 (Mr.Barnes라는 저장강박증이 있는) 노인과의 일화를 통해 만들어진 작품은 인상깊었다.

(좌) https://www.d-art.co.kr/news/articleView.html?idxno=5259 (우) https://v.daum.net/v/GFJL5CFYH7?f=p

 그가 떠난 집에서 발견한 수없이 많은 물건들은 허스트에게 콜라주를 위한 큰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이 작품들은 그가 엄청난 인기를 얻기 전 초기 작품이었기 때문이라서 그랬을지 싶은데 결이 다르게 느껴졌다. 충격적이거나 평면적이지도 노골적이지도 않았다.
(왜 콜라쥬 작품은 사진을 한 장도 안 찍었던가..)
 삶의 흔적이기도, 60년 삶의 궤적이기도 노인의 물건들에서 그가 느꼈다는 마음이 무엇인지도 조용히 그려볼 시간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작은 액자에 들어간 물건들을 보면서 궁금했다. 물건에 붙은 상표들을 보며 당시에 영국에서는 흔하게 잘 팔리던 물건일까? 영국인에게는 필수품의 느낌일까? 이 물건에는 어떤 사연이 있을까? 왜 이 물건을 위에 덧붙였을까?
 일상의 흔적으로부터 죽음과 기억을 끌어내며, 그가 정말 찰나의 순간들을 예리하게 잡아낸다는 느낌이 들었다.
 

문제의 작품, 예술을 위한 면죄부

작은 구멍으로 구역질나는 냄새가 흘러나온다. 뒤의 관객의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그럼 저파리도 외국 파리야?" 궁금하다. 영국에서 온 파리인가?

 그러나 전시를 보고도 잊혀지지 않는 충격적인 작품은, 상어나 죽은 소머리가 아니었다. 대중의 인기를 얻고 난 뒤의 화려하고 큰 작품들, 나비를 붙여 만든 스테인드 글라스, 해골에 붙인 다이아몬드 같이 노골적인 사업주의가 느껴지는 시기의 작품들, 공장식으로 찍어내는 스팟 페인팅 작품들도 아니었다. 또 종교적인 믿음이 현대의 의학으로 옮겨갔다는 생각을 담은 약상자들도 아니었다. (약을 그 효과가 필요한 신체기관의 배치에 따라 놓은 작품과 그가 이러한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인상깊었다.)
 오히려 그가 10대 시절 남긴 사진 한장이 문제였다. 콜라쥬 바로 옆에 걸려있던 초기 작품 중 하나인 사진이다.

이후에도 그는 동의를 얻은 적이 없다.

 이 시신은 해부학 교육을 위해 기증된 상태였다. 이 작품은 전시 초입부터 걸려있다.
단박에 느낄 수 있다. 죽음을 말하기 위해 객관화된 죽음을 보여주지만, 불쾌할 정도로 타자화된 죽음이다. 인간을 비롯한 어떤 생명체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다. 시각적인 충격에 치우쳐 폭력적이기까지 하다.

"이건 저와 죽은 자의 머리입니다. 잘린 머리요. 영안실에 있었고, 진짜 사람의 것이었죠. 제 나이는 16살이었습니다. 제 얼굴을 자세히 보면 사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중입니다. '빨리, 빨리 찍어.' 저는 친구들에게 이걸 보여주고 싶었지만, 제 친구들을 모두 리즈(Leeds)의 영안실로 데려올 수는 없었거든요."

"저는 그야말로 공포에 질려 있었습니다. 웃고 있긴 하지만, 속으로는 저 눈이 번쩍 뜨이면서 '으아아아악!' 하고 소리를 지를 것만 같았어요. 당시 저는 해부학 드로잉을 하고 있었고, 찍어서는 안 될 사진들을 찍은 겁니다. 저에게 그 미소와 모든 상황은 '삶과 죽음 사이의 문제'를 압축해서 보여주는 것 같았습니다."

— 출처: 고든 번과의 인터뷰 대담집 『On the Way to Work』 (2001년 출간) 및 영국 가디언(The Guardian) 발췌 

 사진을 찍는 순간은 아무리보아도 '삶과 죽음 사이의 문제'에 대한 발견이 아닌 친구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마음이었으니, 이후에 덧붙인 해석은 사후 포장에 불과할 뿐이다.
 갤러리나 미술관에서는 이 작품이 가져오는 논란 자체가 큰 홍보가 되고, 상업적 가치가 있기에 윤리적인 비판을 감수하면서 전시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허스트 역시, 윤리적인 비난을 감수하더라도 관객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이 예술가의 역할이라 믿는다고 한다. 논쟁은 훌륭하며, 작품은 관객을 끌어당시면서도 밀어낼 수 있어야 한다, 무시를 당하는 것이 가장 큰 두려움이라는 그의 발언은 그가 금기나 도덕을 위반하는 이유를 추측할 수 있다. 예술가가 가진 명분이 윤리에 앞서야 하는 것일까?
 며칠 전, 정직에 예외가 있어도 되는가를 수업시간에 다루었는데 혼란스럽다. 이 작품이 공개 초기에서 극단적으로 반토막난 반응을 마주했다고 한다. 윤리적 혐오와 저렴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는 의견과 죽음의 민낯은 용감하고 충격적으로 보여준 통찰력이라는 평으로 갈렸다는데,  나는 전자에 들어가는 모양이다.
 예술가는 도덕적 면죄부를 갖는 걸까? 
 

마티스를 좋아하는 그의 멋진 회화 작품

 3개의 전시관을 돌고, 허스트의 의도대로 아주 충격적이고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는 길에 2층을 올라가면, 그의 작업실을 재현해놓은 공간을 볼 수 있다. 자꾸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론 뮤익처럼 작품을 만드는 과정을 비디오 작품으로 보여주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물론 대신 작업실을 충실히 재현해주려고 노력한 것 같다. 
 놀라운 것은 앞서 본 작품들과는 달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회화작품들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섬세한 꽃과 화려한 색채가 가득해서 눈이 즐거웠다. 

실제 전시실은 창문너머로 멋진 강이 보인다고 한다.

 

열심히 찍어온 작품들

 다소 비난이 가득한 포스팅이었으나, 비난을 즐거워할 작가일지도 모르겠다. 섬세하고 예리함도 느껴지는 작품들이 많았다. 아시아 최초의 전시라하니 반가운 마음에 가볼만은 하다. 그러고 보면, 모처럼 흥미롭고 불편했으며 말하고 싶은 것들이 내 마음에 많았다는 점에서 좋은 전시였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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