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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연구/교과 교육

'여기', '지금'을 지닌 과거 속의 벽화를 가르쳐야 한다.

by 팡귄 2018. 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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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5학년 국사 수업을 준비하면서, '고구려의 생활모습을 가르치기 위해 어떻게 벽화를 대할 것인가?' 고민하면서 정리했던 부분을 수정해보았다.





전통적인 예술작품은 진품으로서 그가 있는 '여기' '지금' 맞물려 있을때 그의 아우라적인 권위를 발휘한다. 

                                                                                                 _ 발터 벤야민


( 요즈음 미술들은 '장소성'을 잃어가는 것 같다는 글을 읽고 적어둔 것이 엊그제인데, 이 우려에 대한 대답이 아닌 반박을 해줄만한 글을 읽고 있다. '장소성'을 잃은 것과 잃지 않았던 이전은 아마도 현대미술과 전통미술의 차이라는 시각에서 조금 더 생각했어야 할 것 같다. )


다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 다른 시대를 살게 될 사람들

'플라톤, 구글에 가다'라는 책에서 그랬듯이 당시의 철학자가 지금, 우리를 위한 철학을 했을리 만무하며 그럴 수도 없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사실이나, 기술이 지금 쉼없이 등장하고 있고, 다르게 알고 믿고 있었던 과학적 사실이나 가치관을 중심으로 고민한 것들이기에 분명 그럴 수 밖에 없단 말이었다.
플라톤의 대화를 현대에 가지고 와서, 모든 고민이나 세속적인 문제들에 대하여 뭔가 현명하고 큰 답을 내려줄 것이라고 기대했던 나에게는 종을 치는 듯한 충격이었다.

그러나 내가 항상 저런 안일한 기대를 품는 것은 아니었다. 과거에 대한 주제를 다룰 때에는 당시의 가치관을 머릿속에 품어보려 노력한 다음에, 처한 환경을 곱씹어보고서 그들이 맞딱뜨린 문제를 생각해본 적이 많았다. 과거를 대할 때에는 '과거 사람들은 생각이 많이 달랐으니까.'라고 쉽게 떠올렸던 것이다. 그런데 미래를 다룰 때에는 그것이 오히려 좀 더 미숙했다.
미래는 당연히 현재의 연장선상에서 떠올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그랬고, 너무 먼 미래가 아니라면 마땅히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였나보다. 미래학 관련 책에서 읽은 한 문구는 참 인상적이었다. 2050년의 실업률 50%라는 수치는 실은 그 미래의 사람들에게는 큰 걱정이 아닐 것이라는 문장이었다.
'어떻게 걱정을 안 할 수 있지?' 생각하다가 아차 싶었다. 아주 먼 미래에나 올 줄 알았던 변화가 그토록 빨리 올 것이라는 점도 충격적이었고, 둘째로 그런 변화가 오더라도 미래의 사람들도 지금의 나와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라는 사고방식이 참 안일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이 아닌 그 공간


돌아보니 벽화를 주제로 공개수업을 준비하면서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왜 그렸는가?'였다. 왜 그렸는지 알아야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사실은 그린 것은 눈에 보이기에 쉽게 알 수 있는데, 어떤 부분에서 고구려의 문화를 찾아야 하는 것인지 고민이 컸다. 삼국의 문화를 유물, 유적을 통해 살펴보는
단원이었다. 국사 수업이 항상 그렇듯이 한 나라의 문화라는 것을 그 범위를 잡기도 쉽지 않고, 일부만을 택한다면 무엇을 택해야 할지, 어디에 중점을 두어야할지
끝없는 고민이었다. 다만 다행인 것은 내가 택한 고구려는 온통 '벽화'만이 실려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벽화가 그려진 곳이 어떤 장소인지 다시 한 번 짚어보았을 때, 그때부터 생각이 막 풀리기 시작했던 것 같다.
당시 매체철학 스터디에서 읽은 '20세기의 매체 철학'이라는 책과 '난생 처음 한 번 읽는 미술이야기'가 동시에 말하기 좋아하는 친구처럼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사고방식에서 과거의 작품을 대할 때

아이들이 염원이 무엇인지 느낄 수 있을까? (사실 우리 반에는 염원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아이도 많았다.) 염원을 품었을 때 그림으로, 글로 남기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을까? 벽화를 해석한다는 것은 역사학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일까?




어려운 수준이라면 쉬운 수준에서 접근해야 한다. 소원하던 것에 대해 일기를 쓰던 것과 나란히 비교라도 해주어야 한다. 신분에 따른 그림 속 인물의 크기를 다룰 때에는 먼저 그려봐야 한다. 한 사람은 무릎을 꿇고 음식을 준비하고 있고, 다른 한 사람은 편히 앉아 손하나 꺼내지 않고 있기에 아이들에게 두 인물은 분명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로 다가왔을 것이다. '신분이 다른 사람'이라는 이해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신분의 차이를 벽화에 표현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할지 고민하던 그 당시의 화공의 마음을 느꼈으면 했다. 신분의 차이를 더 드러낼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까?




# 벽화를 완성하는 정보차활동


두 사람을 반쪽씩 보여주고 정보차활동을 통해 그림전체를 완성하게 해본 다음, 다같이 전체 벽화를 살펴보았다. 모둠원의 한 아이만이 전체가 그려진 종이를 들고 다른 나머지 친구들에게 말로 설명했다. 옷차림부터, 자세, 생김새를 꼼꼼히 설명하다보니, 한 사람이 시중을 들고 있다는 사실은 금방 파악했다. 그림을 먼저 다같이 발표했는데, 그림에서 나오는 (실력의 차이나 과감한 성격 등이 반영된 ㅎㅎ) 개성적인 표현들 덕분에 발표 시작부터 웃는 재미도 있었다.


모든 아이들은 그린 벽화는 하나같이 사람의 크기가 나란하고도 같게 그렸다. 그런 다음 실제 벽화를 보여주자 아이들은 많이 놀랐다. 나조차도 저렇게 크기가 달랐나하며 다시 놀랐다.
'그림을 그릴때 크기를 다르게 그려본 적있니?'라는 질문에 '사람은 그런 적 없어요.'라는 대답들이 나왔다. 집 같은 것은 작게 그린 다거나, '멀리 있는 것은 작게 그린다.', '귀찮아서 대강 그릴 때는 그런다.' 등의 대답이 나왔다. 이때 나는 사실 특이한 구도로 찍은 사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 중심이 잡힌 사진들, 어떤 인물보다 다른 인물이 더 중요하게 나온 사진들말이다. 사진이나 그림같은 회화에도 작가의 의도가 반드시 담긴다는 것을 한번 더 이르짚어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장소성, 미술관이 아닌 무덤의 벽에 그려진 고분벽화는 생활 모습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기록하고자 남긴 그림이 아니다. 평민들을 감상자로 전제하지 않았을 뿐더러 애초에 감상자를 염두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다만 벽이라는 매체가 기억을 대신하여 다음 세상을 위해서든, 죽은 이에 대해 알리기 위해서든, 어떤 염원을 담기 위해서든 그려지는 과정에서 의도가 남아있기에 그것을 감상해야 할 것이다. 의도를 찾다보면 자연스럽게 살아남은, 많은 일상 중에서 선택되어진 생활 모습이 더 깊이 이해가 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생활모습을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벽화가 갖는 장소성과 의도는 정말 중요하기 때문이다. '무덤'에 그려진 이 벽화는 출입이 어려운 이 곳에서 '주술적인 역할'을 갖고 있었다. 내 생각에는 담겨있는 소망이 먼저 이야기되면 좋지 않았을까 싶다. 생활모습을 다루기 위해 고분벽화를 의복이나 가옥구조랑 나란히 두는 것은 조금 아쉬운 접근이였다는 생각이 든다. 생활모습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는 '선택되어진' 생활 모습이다.


백제와 신라는 유물이 한 가득인데, 고구려는 고분벽화 뿐이다보니 생활모습을 찾기 위해서 벽화를 살피게 된다. 현실적으로 고구려의 유물이 출토되는 지역이 우리나라 영토에 속해있지 않다는 어려움도 한몫할테다. 그렇다면 생활 모습을 찾기 위해 벽화를 다루는 접근은 당연하다.
그렇다면, 정말 그런 의도라면, 그림이라는 평면적인 구조에서 4차원의 생활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왠만한 고고학자에게도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너무나도 많은 벽화를 부분적으로 잘라 붙여놓았다.

찾으면서 뒤늦게 안 것은 '그 크기가 놀랍다는 사실만이 강조되는' 장군총에는 괜찮은 벽화가 없다는 사실이다. 정작 교과서에 실린 벽화의 대부분이 무용총 같은 다른 고분에서 발견되었다. 그리고 이 고분이 있는 곳은 고구려의 두번째 도읍지인 국내성, 지금의 중국 지안시라는 점이다. 어디에서 나온 유물인지도 모르기에 증명사진보다 조금 큰 크기의 사진조각으로 접한 벽화에서 생활모습을 상상하기란 더욱이 어렵다.


가령 무용총의 수렵도를 보자. 수렵도를 자주 마주쳐왔던 나에게 화살의 모양은 중요하지 않았다.


산이 작고 구불거리면서 '역동성'이라는 와닿거나 와닿지 않는 고구려인들의 기세를 느껴왔던 흔한 그림이다. 고구려하면 떠오르는 포장지, 로고 정도 되겠다. 그런데 수렵도의 인물들이 무엇을 쫒고 있고, 산이 어떠하고 이야기를 나눈 뒤, 벽화를 덮고 10초간 화살을 그려보라 하였을 때 벽화가 진짜 빛을 발하는 듯 했다.


화살을 다같이 뾰족한 세모모양의 촉이 달린 막대에 깃털을 붙여 그리고, 반달모양의 화살을 그린다. 실은 수렵도에 등장하는 고구려의 화살은 동물들의 뼈 조각을 이어붙여 만들었기에 벽화에서도 눈에 띄는 조각들을 찾을 수 있게 나타나있다. 화살촉 또한 도끼모양 등 다양한 고구려 당시의 화살촉의 일부를 알려주듯이 뾰족하지 않으며, 그 뒤에 동그란 것이 달려있다. 소리를 내는 부분으로 '명적', '효시'라고 일컫는데 그 소리로 동물들을 몰아가기도 했다.


중공군의 피리소리를 예로 들어 이야기해주고는 했는데, 유투브에서 화살을 쏘는 장면과 그 소리를 직접 들려주었다. 그리고 서양의 직궁, 거의 일자에 가까운 화살과 달리 D형의 굽은 고구려의 화살, 맥궁, 각궁이 갖는 장점, 사정거리의 우월함을 그림으로 그려 보여주었다. 그래서 활쏘는 기술이 뛰어나다고 한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책, 저 책 찾아보면서 모았으니 오류가 있을까 싶어 걱정은 되지만, 그래도 벽화를 자세히 보고 소리도 상상해볼 수 있다는 기억을 심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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