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니 빌뇌브라는 장인이 만든, 듄의 디테일을 담은 메이킹 필름북
1. 메이킹필름북은 매니아가 읽는 것이 아니다.
2.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이루는 사람의 특징.
3. 섬세함, 장인
4. 생각하는 컴퓨터는 위험하다, 진보하지 않은 미래
5. 샌드스크린, 해결에 초점을 두고 고정관념을 없애기
6. 분명한 이유가 있는 디자인들.
7. 간결함을 위해 주변에서 얻은 것.
1. 메이킹필름북은 매니아가 읽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동안 필름북, 메이킹북, 대본집 등은 그 작품의 매니아들이 읽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영화나 드라마를 봤으면 그만이지.' 하면서 제작과정이나 대본을 정리한 책들이 서점에 나오면 잘 열어보지 않았다.
더구나 듄에 대한 열렬한 팬도 아니었기에 이책은 왠만해서는 펴보지도 않았을 책이다. 듄1을 보고도 까먹어서 듄2를 보기 전날 밤에 겨우 반절을 보고 극장에 갔었다. 안타깝게도 나는 듄2가 개봉하는 와중에도 이영화가 '티모시 샬라메라는 유명배우의 힘을 빌려 흥행하고 있는 시리즈물' 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듄1을 봤을때 '생각보다 재미있고, 배우들이 연기도 잘하며, 말도 안되는 상상의 이야기인데, 어설픈 빈틈이 없네.'라는 느낌을 받았었다. 약간 반지의 제왕과 비슷한 느낌이 었다. 탄탄한 판타지, 완전히 창작의 세계지만 어설프지 않고 경외감도 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그리고 이어 듄2를 보고는 '이 영화는 감각적으로 참 많이 특별하긴 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아차산 숲속 도서관에서 굵은 듄 메이킹 필름북을 열어보기로 했다. '뭐가 좀 달랐을까?' 싶은 기대감과 '소설을 영화화하는 과정은 어떻게 가능할까?'하는 궁금증이 들었기 때문이다. 예상과 달리 영화 제작 과정을 모은 단순한 기록이나 포토북 정도가 아니었다. 영화 시나리오를 몇년 전부터 완성하는 것인지, 그리고 기존 소설에 기반할 때 어디까지 그대로 가져가고 어디를 수정하는지, 그런 결단은 어떻게 내렸는지도 엿볼 수 있었고, 거대한 서사의 영화를 만들면서 수많은 사람들과 협력하는 과정에서는 어떤 점을 유지하고 어떤 점은 유연하게 가야하는지도 느꼈다. 무엇보다 감독이 굉장히 비범한 인물임을 느낄 수 있었다.
2.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이루는 사람의 특징.
영화에 관심있다면 꼭 보고, 또는 자신이 하고 싶은 목표를 완벽하게 이루는 사람 이야기를 보고 싶을 때 읽어보면 좋겠다. 물론 듄에 푹 빠져서 영화의 디테일함에 대해서 익히 알고 있더라해도 여전히 재미있을 책이다.
책을 읽으면, 어떻게 영화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한 굉장한 노력들이 등장하는데 의상, 배경, 소품, 장치 등 그 결과물이 나오기 까지의 끝없는 고민과 선택이 느껴진다.
창의적이고 새로우면서 세련된 해결책들이었다. 그러면서도 강박적일 정도로 느껴지는 완벽함을 추구하는 드니 빌뇌브의 철학을 느낄 수 있다. 300쪽에 달하는 안내서를 모든 구성원들에게 공유하여, 제작과정에서 일관된 시각과 방향, 예술성을 갖도록 이끌었던 점이 인상적이었다. 책을 넘길수록 단지 영화를 잘 만드려는 게 아니라 <듄>의 세계를 완벽하게 구현해내겠다는 목표를 이루고자 한 것 같다.
3. 경악스러운 섬세함, 장인
드니 빌뇌브는 오래 전부터 <듄>을 영화화하는 것을 꿈꿔왔다는 이야기로 책의 첫장이 시작된다.
'내꿈은 이것입니다.'라고 단언하는 것은 참 어려운 일 아닌가?
그는 항상 듄을 영화화하는 것이 인생이 목표였다고 망설임 없이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소원했던 일인 만큼 치밀했다. 그는 의상이나 소품 뿐만 아니라, 조명, 배우의 목소리가 들리는 크기, 목소리가 들리는 순서 등 세밀한 부분들을 모두 자신의 기준선에 부합할때까지 다듬었고, 이전에 없던 방법을 만들어서라도 그 기준선에 부합하도록 했다. 감탄스러웠다.
4. 생각하는 컴퓨터는 위험하다, 진보하지 않은 미래
SF소설은 보통 일어날 것 같은 상상을 ‘마음대로’ 구현해놓는 재미가 쏠쏠한 장르 아닌가? 그런데 특이하게도 <듄>을 볼때면 새로운 기술들의 다채로운 향연이라기 보다는 저건 가능한데, 저건 안되네 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듄>의 시간적 배경은 제국력으로 10,191년이다. 지금으로부터 엄청 먼 미래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의 짐작과 반대로, 이 SF의 세계에는 컴퓨터가 단 한 대도 없다. 드니는 이렇게 설명한다. "생각하는 기계가 자신의 생존에 위협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은 인간들이 그 기계들을 없애버렸습니다." 소설은 1965년에 발표되었지만, 인공지
의 광범위한 사용을 예측한 대목에서는 예언자의 분위기가 난다.
<듄>의 세계관에서 미래는 생각하는 기계의 위험성을 알고, 이를 없애버린 후의 미래다. 1960년대의 소설에서 이런 생각이 나왔다니 놀라울 뿐이다.
5. 샌드스크린, 해결에 초점을 두고 고정관념을 없애기
아마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감독이 공간이나 색이 주는 아우라에 굉장한 의미를 부여한 인물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막은 황량하고 외롭다. 생전 가보지 않았던 어릴적 사막을 책이나 영화에서 만나는 누구라도 공통적으로 황량함에서 그런 감정을 떠올릴 것이다. 영화 속 주인공이 처한 어둡고 불안한 상황에서 사막이라는 배경은 더욱 숨막히게 만드는 배경이었다.
영화의 대부분을 사막에서 찍기도 하였지만, 건물이나 끝없는 황량한 사막을 구현해낼 때 역시 CG를 활용했는데, <듄>에서는 흔하고 오래 써왔던 초록색이나 파란색 스크린을 쓰지 않았다.
* 초록색과 파란색은 사람의 피부색과 대조되기에 컴퓨터 그래픽 처리를 할때 얼굴까지 날라가는 일이 없어 계속해서 사용되어 왔다고 한다. 초록색이 더 자주 쓰이는 것은 파란색은 자칫 서양 배우들의 파란 눈까지 함께 날리는 경우가 많아 그렇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오래되고 보다 안전하고 쉬운 방법을 쓰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초록색과 파란색이 배우나 건물, 유리창에 반사되면 표면에 미묘하게 나마 사막의 그 갈색 톤이 아닌 푸른 또는 초록 빛이 감돌게 된다. 특히 자동차 등의 유리창에 초록색 스크린이 심하게 반사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영화 속 차량의 유리는 영화 촬영 이후 합성한다고 한다!
그런데 스크린 자체를 모래 색상으로 만들어 ('샌드 스크린'이라고 설명함.) 큰 벽을 세우니, 배우들의 피부에도 공간에 놓인 비행물체의 유리창에도 자연스럽게 끝없는 모래 사막의 색이 비치게 되었다.
또, 이 모래색을 반전시키면 파란색이 되기 때문에 블루스크린으로 기능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이는 배우들이 감독이 설계한 <듄>이라는 세계에 몰입하는데에도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배우들이 처음 부다페스트에 도착했을 때 세트장을 구경시켜주는 일은 정말 즐거웠다. 그들이 놀라서 입을 떡 벌리는 모습은 아무리 봐도 질리지 많았다. ...... 가로로 좁게 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스튜디오 불빛이 눈이 멀 것 같은 사막의 햇빛을 연출했다. 미니멀한 디자인인데도 아주 오래틴 대서택처럼 느껴지는 세트였다. 배우 스티븐 매킨리 헨더슨은 이렇게 말한다. "어렸을 때 본 영화 <십계>와 <벤허>가 생각나더군요. 이 세트잠에 처음 들어섰을 때 생각난 게 그거었습니다. 마치 피라미드 안에서 일하는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메리 페어런트는 이렇게 설명한다. "
이 영화에서 우리가 진짜 같은 세계를 생생하게 구현해 냈다는 생각에 정말 신이 났습니다. 드니가 처음 본능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이 점이고, 우리도 이 이야기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이 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 레지던시 별도 면은 가능한 한 모든 각도에서 해당 장면의 시간대에 맛춰 조합된 다양한 조명으로 촬영되었다.
6. 분명한 이유가 있는 디자인들.
드니는 <듄>의 여러 집단이 각각 뚜렷한 문화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남작의 옷이 파자마같은 느낌이 드는 이유, 그리고 둥 떠있으며 끝을 알 수 없는 듯한 의상을 입은 이유도 모두 의도가 있었다.
이 황량한 행성에는 주로 바위들이 기묘한 풍경을 이루고 있다. 파트리스 베르메트는 이렇게 말한다. 앞에 실린 그림은 공중에서 내려다본 파리의 풍경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것입니다. 건물들을 돌로 만들면 파리가 그 그림처럼 보일 거예요." 실제로 파리의 지도에서 예전에 에투알 광장이었던 샤를드골 광장을 확대해 보면, 대로들이 여러 구역을 향해 거미줄처럼 쁜어나간 것을 볼 수 있다. 살루사 세코더스를 그린 그림과 상담히 흡사하다.
"남작의 방은 유기물과 흡사한 모양이에요. 고래, 흉곽, 해골을 연상시키죠."
드니가 이 생물을 최대한 실제 생물처럼 그리고 싶어했기 때문에, 더그 할로커는 이 쥐를 디자인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실물 크기의 모형도 만들었다.
"정말 놀라웠어요. 그렇게 방대한 세트인데도 우리는 구석구석 단 한 곳도 빼놓지 않고 촬영에 활용했습니다.촬영 중반쯤에는 오히려 더 실험해 볼 촬영 각도를 찾을 수 없을 지경이었죠." 파트리스의 팀은 비용 효율을 위해 세트에 커다란 기동을 덧붙여 건축양식에 변화를 주었다. 그 덕분에 레지던시에서 아직 보지 못한 부분이 처음으로 화면에 잡힌 것 같은 환상이 만들어졌다.
1편에 잠깐 등장하는 독침(곰 자바)이 있다.독침의 문양을 보면 예술팀에서 모든 소품에 혼신의 힘을 다했음을 알 수 있다. 아주 자세히 보면 우리나라 청동 거울의 뒷면처럼 굉장히 섬세한 무늬가 들어가 있다. 감독이 말하길 영화를 멈추고 현미경으로 들여다 봐야 잘 보일 것이라는데, 그러한 부분까지도 완성한 것을 보면 감독이 단지 영화를 만든다가 아니라, <듄>의 세계를 구축하기 위해 단지 영화를 이용했을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관객이 보지 못 하더라도 완성되어야하는 부분들이 매우 많았다.
또 하나, 악기. 1편에 악기를 연주하는 부분이 있다. 이 전통악기 소품을 1년에 걸쳐 직접 구상하고 연주가 되는지 보고 악보를 만들어 연주하는 장면이 영화 속에 들어갔다. 모든 것에 완벽과 진심을 담는 사람 같다.
7. 간결함을 위해 주변에서 얻은 것.
책을 읽는 내내 긴 제작과정에서 모든 사람들이 감독처럼 듄의 세계를 구현하는데에 미쳐있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만한 인물들을 섭외했을테지만 예술감독, 조명, 카메라, 배우, 자문 등 각자의 역할을 지독하게 수행해나간 것은 감독의 일관된 끈기과 완벽주의가 영향을 주었을 것 같다. 그리고 확고하고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정해주니 모든 구성원이 따라갈 수 있었을 것이다.
절박한 상황을 긴 설명없이 나타낸 디자인. 부족함을 나타내는 방식은 four in a row게임(오목 비슷)에서 떠올렸다.
파트리스는 포인 어 로(FOUR IN A ROW, 같은 물체 네 개를 한 줄로 배치하는 게임) 게임을 우연히 발견한 뒤 고갈된 사일로 디자인 아이디어를 반짝 떠올렸다.
“달걀바구니 같은 구조물에 사일로를 집어넣는 아이디어였습니다. 달걀 열두 개가 있어야 하는 곳에 세 개밖에 없다면 많이 부족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테니까요."
이런 섬세한 장인들이 모이니 더할 나위 없는 멋진 작품이 완성되었다.
추가 참고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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