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AI + 대학원/논문 책 리뷰

[책] 게임에 현실을 녹여내는 친구들과 끝없는 고민,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

by 팡귄 2024. 7. 21.

가브리엘 제빈 _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1. 책을 읽게 된 재밌는 계기

2. 솔루션, 허락없는 인용이지만 영감을 얻었다는 변명

3. 문장들


평점 : ⭐ ⭐ ⭐ ⭐

있으면 좋을 배경경험 :

1) 동키콩, 오리건 트레일, 하베스트문, 심즈, 에버퀘스트 등의 게임을 해본 적이 있으면 더 재밌을 것이다.

 

2) 세익스피어의 연극을 본 적 있거나 좋아한다면, 마크스라는 인물과 소설 전체를 더 풍부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필자는 하베스트 문을 정말 매우 좋아했고 (동물의 숲에 가까운 농사게임), 동키콩은 어릴 적에 잠깐 지나가듯 보았으며, 심즈의 중독자였는데 책을 읽는데에 어려움이 없었다. 너무 반가워서 웃기거나 다시 플레이 하고 싶은 생각도 많이 들었다. 마비노기와 같은 ㅎ 국내 MMOPRG를 즐겼던 것도 이해와 재미를 돋구어 주었다. 좀비 게임도 좋다. 어떤 게임이라도 좋아했던 적이 있다면, 반드시 중간에 반가워서 웃음이 나는 부분이 있을 것이다.

평화로운 하베스트문 출처 (좌) https://m.blog.naver.com/ssoso_94/221001601412 (우) https://blog.naver.com/eeuu1133/221474909068?viewType=pc


 제법 많이 읽었다고 느꼈을 때, 무려 500쪽에 와있어서 매우 놀랐다. 300쪽 쯤 읽었나 했는데 말이다. 그만큼 흡입력이 좋았던 책이다. 다만, 논란이 있던 작품이라는 사실을 하필이면 책의 1/3도 읽지 못했을 때 알았기 때문에, 읽는 내내 그점이 아주 마음에 걸렸다. 그럼에도 서평을 구구절절 쓰는 건 소설의 소재도 마음에 들고, 인물들도 그리고 인물의 속마음을 표현하는 많은 문장들이 기가 막혔던 것 때문이다.

주요 인물들은 샘슨 매서(남성, 한국, 유대 혼혈, 하버드 수학과), 세이디 그린(여성, MIT 컴퓨터과학과)으로 어릴적 병원에서 만나고 이후 대학생이 되어 다시 우연히 만나 게임 개발을 시작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샘슨의 룸메이트이자, 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마크스 와타나베(일본, 미국 혼혈, 하버드 경제학과)는 대학 내 연극동아리에서 배우의 꿈을 키우기도 하나 게임 프로듀서로 둘을 돕는다.

* 인물의 성별, 혼혈은 소설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중요 특징이다.

 또 중간에 연극 대사나 장면들이 소설에서 게임 못지 않은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책 제목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역시 마크스의 대사에서 등장하며, 이는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멕베스에서 등장하는 독백의 일부다. 소설 속 갈등을 중간 중간 게임의 장면으로도 치환하지만 연극으로도 풀어내는 장면이 자주 엿보인다.

 


1. 책을 읽게 된 신기한 계기

 

우선, 이책을 결국 읽게된 계기는 좀 신기하다.

 3월에 영어 원서를 읽어보겠다고 교보문고를 돌아가 마침 표지에 눈이 가서 이책을 집어들었다. (일부 서평 말대로 원서의 표지가 매력있다. 하지만 또 소설을 다 읽고보니, 주인공들이 고생해 구현했던 게임 속 파도 이미지가 담긴 것 같아 한국판표지도 정이 든다.)

 이 파도는 소설에서도 여주인공이 좋아하는 그림으로 소개되는 가쓰시아 호쿠사이의 작품에서 참조했다.

빈센트 반 고흐도 이그림을 인상적으로 보고 평을 남겼다 한다. 파도의 끝이 손을 뻗는 듯 하다.

 표지도 마음에 들었고, 소재도 게임 개발을 하는 두 친구의 이야기라니 흥미로웠다. 그러나 꽤 고민을 하다 내려놓고 왔다. 분명 읽은 사람마다 칭찬 일색에 아마존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던 베스트셀러이자, 전작들도 이미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었지만, (실제로 이 내일또내일또내일은 훌륭했다. 인물의 갈등이나 고민을 표현하는 문장들이 매우 인상적이어서 적어놓고 싶은 부분이 많았다.) 당시에는 워낙 마음에 여유가 없었나보다. 

 그렇게 이책을 잊고 있었는데, 7월초 동생이 요즘 읽는 책이 재밌다며 아주 낯익은 책을 들어보였다. 표지의 파도 그림, 그리고 단순한 제목이었던터라 곧바로 이책이 그원서의 번역판임을 알아차렸다. 똑같은 책을 집어들었다는 것이 신기해서라도 읽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곧 동생이 "여기 좀 읽어봐."하고 책을 건넸다.

그 페이지 때문에 바로 동네 도서관에서 그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여주인공이 대학교 과제로 만든 <솔루션>이라는 게임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2. 솔루션, 허락없는 인용이지만 영감을 얻었다는 변명

 

 소설의 초입에서 세이디 그린은 MIT 대학시절 과제로  <솔루션>이란 게임을 개발한다.

놀라웠지만, 안타깝게도 읽는 내내 마음의 부채감이 들게 한 것도 바로 이 게임이었다.

우선, 솔루션은 '게임을 점수로 이기면 윤리적으로 지는' 게임이다. 

간단히 말해, 게이머가 무작정 장치를 만들지 않고, 질문을 하고 정보를 얻으면 점수는 낮아지나 이 부품이 독일의 유대인 말살 정책을 위한 물건이라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고득점을 향해, 아무 질문없이 최선을 다해 부품을 만들고나면 그 엔딩은 승리이면서도 패배인 것이다.

<솔루션>의 요체는, 게이머가 무작정 장치를 만드는 데에만 급급하지 않고 간간이 질문도 하고 정보도 얻으면 점수는 낮아지지만 자신이 독일 제 3제국에 공급되는 기계 부품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정보를 입수하고 나면 게이머는 생산량을 낮출 수도 있다. 제국이 감지하지 못하는 선에서 최소량만 만들어낼 수도 있고, 부품 생산을 아예 중단할 수도 있다. 질문을 하지 않는 게이머는 ‘선한 독일인’으로서 태평하게 최고점을 얻겠지만 결국에는 자신의 공장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독일식 활자체 문구가 화려하게 화면을 수놓는다. 축하하오, 나치당원! 귀하는 제 3제국을 승리로 이끄는 데 기여 했소! 귀하는 진정 효율화의 달인이구려! 미디로 손본 바그너가 울린다. <솔루션>의 핵심은 게임을 점수로 이기면 윤리적으로는 진다는 점이다.

소설 속 비디오게임은ㅜ브렌다 로메로(Brenda Romero)의 TRAIN이라는 보드게임과의 유사성으로 인해 논란을 일으킨다.

트레인은 다른 플레이어와 겨루며 목적지까지 자신의 기차를 더 빨리 도착시키면 이기는 게임이다. 다만, 그 도착지가 유대인 수용소라는 것이 문제이다. 

 플레이어는 작은 노란색 인형을 박스카에 싣고 기차를 코스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옮기라는 요청을 받습니다. 플레이어는 진행을 방해하거나 일부 캐릭터를 구출하는 카드를 뽑습니다. 기차가 "결승선"에 도달하면 게임이 완료되고 기차의 목적지가 아우슈비츠라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아무도 "이긴" 것이 아닙니다. (https://www.wsj.com/articles/BL-SEB-21)

 브렌다의 설계 의도는 플레이어의 '공모'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위에 링크 걸어놓은 브렌다의 인터뷰는 읽어볼 만하다.

 논란에 대한 출판사와 작가의 반응이 담긴 기사 ( https://www.washingtonpost.com/books/2023/03/24/train-board-game-brenda-romero-tomorrow-and-tomorrow-and-tomorrow/)를 보면 개인적으로 아쉬움이 든다. 

 실제로 솔루션이라는 비디오게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TRAIN은 보드게임이다. 물론 게임의 범주에 들어가지만 다르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두 게임이 단지 소재가 같은 것이 아니라, 게임의 승리가 곧 패배이며, 질문하지 않고 맹목적으로 규칙을 따른 경우 게임의 엔딩에서 느끼는 바가 핵심이라는 점에서 너무나 닮았다는 점이다.

 이후 작가는 train이라는 보드게임에서 영감을 받은 것은 맞다고 하였으나, 의아한 판단을 내렸다. 책의 마지막 장을 마련하여 다른 다양한 비디오게임의 이름과 제작자, 인용한 연극 등을 설명하면서도 이 보드게임에 대한 언급은 전혀 올리지 않았다. 

출판사는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은 소설이지, 인용 출처를 철저히 밝혀야할 논문이나 학문적 텍스트가 아니며 책에서 언급했던 게임들은 모두 '비디오 게임'에 한정한다고 설명했다. 
“The entire world, characters and themes of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are solely Zevin’s fictional creation and the only games listed in the author’s acknowledgments are video games. Again, ‘Tomorrow, and Tomorrow, and Tomorrow’ is a novel and not an academic or nonfiction text containing indexes, notes, or works cited. Knopf stands behind Gabrielle Zevin and her work.”

작가 본인도 감사인사의 목록에서 완전하지 않은 부분이 있지만,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의 공로를 인정하기 위해 노력했고, 또 사실 누가 어떤 도움을 주었는지 샅샅히 밝히기란 어렵다는 걸 모두가 아는 바라고 답했다.

Zevin, in the novel’s acknowledgments, says that her list may not be complete: “For the most part, I have credited the designers,” she writes, “but as readers of this book will know, it is difficult to say who is responsible for any game or game element unless you were there.”


 소설을 반도 안 읽은 시점에서 작가가 이런 행동을 했다는 것을 알고 읽는 내내 마음에 걸렸다.  외국 기사의 댓글에서는 반응이 생각보다 나뉘었다.

- 감사 인사를 밝히는 부분에 넣지 않은 것은 큰 실수이거나, 혹은 숨기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 출판사는 입을 다물어라

- 창의적인 도둑일 뿐이다.

- 인용 허락을 구하는 것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반면

- 진공에서 (무에서) 창조가 일어날 수 가 없다. 수많은 곳으로부터 영감을 받는 일은 흔하다.

-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이다.

- 소설에서 중요한 부분도 아니었다.

- 이것은 소설이다. 모든 출처를 밝힐 필요가 없다.

 

 어떤 댓글은 [ '샘'과 '세이디'는 우리집 개 이름이다. 내가 개를 키우는 동안 작가도 한번은 들었을 거 아니냐, 이에 대한 감사인사를 언급하지 않았다. ] 는 유머를 담아 비꼬는 의견도 보였다.

 그러나 내 생각은 이 게임 아이디어는 (브렌다의 TRAIN 게임은 큰 주목을 받았고, TED 강연 및 대학 강의에서도 많이 활용되어오고 있다고 한다.) 매우 독특하며, 특히 소설 속에서 작가가 이 게임과 브렌다를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 살짝 드러난다. 

- 게임의 유사성과 의도에 대한 소설 속 서술이 TRAIN에 대한 서술과 매우 닮았다.

- TRAIN 게임 처럼 MIT라는 장소에서 개발된다.

- 브렌다의 남편에 관한 묘사가 같이 등장한다.

 이런 점을 발견한 브렌다는 작가가 분명히 자신 및 게임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허락을 구하거나 책의 말미에 언급조차 않는 것에 분노했다.

 소설 속 '솔루션' 게임은 세이디 그린이 처음으로 제법 인정받는 게임이자, 샘과 다시 재회하고 대화를 시작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전체 흐름에서는 비중은 없다는 의견이 있지만, 분명히 소설 초입에서 세이디 그린이 만들고자 하는 게임이 어떤 성격을 갖는지, 왜 사회적 게임이 되어야하는지를 설득하는 중요한 장치이다.

 과연 작가가 이를 놓친것일까? 소설자체는 참 재미있는데 이점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3. 문장들

공감이 가거나 묘사가 재밌어 꼭 적어두리라 다짐한 문장들이 많았다.

특히 인물의 고민이 담긴 문장들이 인상깊다. 모든 등장인물들이 다 이야기가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게임의 개발과정에서 겪는 고민도 좋았지만, 장애를 가진 샘이 마주하는 현실에 대한 시각, 여성 개발자인 세이디가 맞이하는 많은 성적 편견, 혼혈아가 갖는 마크스와 샘의 정체성 혼란과 그리고 동성애에 대한 차별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조금 과한 반복이지 않나 생각하면서도 작가 역시 혼혈과 여성이라는 정체성에서 평생에 걸쳐 느꼈을 혼란에 비하면,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분명한 것은 작가의 삶이 확실히 들어가있다는 점이다. (작가 역시 하버드 출신! 주인공들의 대학시절 묘사가 괜히 더신뢰가 간다) 

어떤 게임을 갖다줘도 잘못된 점은 콕 집어 말할 수 있었지만,
어떻게 훌륭한 게임을 만드는지는 꼭 안다고 할 수 없었다.
모든 풋내기 예술가들에겐 취향이 제 능력치를 앞서는 시점이 있다.
이 시기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이것저것 만들어보는 것이다. (116)


실패를 온몸에 뒤집어쓴 느낌이었고, 그게 딴사람들 눈에 보이고 냄새가 날 거라고 확신했다. 실패는 재를 뒤집어쓴 것과 같았다. 다만 실패는 피부만 덮지 않는다. 그것은 콧속에, 입안에, 폐 속에, 세포 속에 들어가 세이디의 일부가 되었다. 앞으로 영원히 제거할 수 없을 것이다. (329)

어쩌면 사람을 절망에서 구원하는 것은, 기꺼이 놀고자 하는 의지일지도 몰랐다.(620)

답을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적절한 질문을 충분히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62)

실력이 훌쩍 도약하게 된 이유는 바로 자신이 이기심과 원한과 불안으로 똘똘 뭉친 독종이었기 때문이라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세이디는 비범해지기 위해 스스로를 의지의 힘으로 밀어붙였다. 일반적으로 예술은 행복한 사람들에 의해 성취되지 않는다.

실패가 네게 준 조용한 시간을 기회로 삼아야지. 너한테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걸 생각해.(353)

혼혈인이라면 누구나 이렇게 말할 것이다-둘을 합한 것의 반쪽이라는 건 이도 저도 아니라는 얘기라고. 그런데 나는 유대 것이든 한국 것이든 별로 아는 게 없고 딱히 그들 문화에 대한 이해가 풍부하지도 않다, 어쩌다보니 이도 저도 아닌게 돼서.(132)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