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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 대학원/논문 책 리뷰

[인물/책] 후안 엔리케스 - 무엇이 옳은가 : 윤리는 제품 수명 주기를 따른다.

by 팡귄 2024. 10. 13.

후안 엔리케스


후안 엔리케스 _ 무엇이 옳은가

목차

0. 미리 준비할만한 것

1. 책을 읽게 된 계기 

2. 흥미로운 문장과 생각


 

0. 미리 준비할만한 것

 뭔가를 윤리적으로 평가해야하는 상황에 처했거나, 누군가에게 옳은 것을 설명해야하는 처지가 되었을때 읽어볼 만한 책이다. 그리고 그 '문제상황에 대해 나의 평가'나 '나는 무엇이 옳다고 생각하는지', (너무 방대하다면 구체적인 딜레마를 가지고 나의 의견을 정해보아도 좋겠다.) 생각하고 미리 간단하게 메모라도 해놓고 읽으면 좋겠다.

나는 누구에게 옳고 그름을 배웠을까? 누구로부터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배웠을까?

 나는 이책을 읽기 전과 후에 태도가 많이 바뀌어서 이전의 나처럼 생각하기가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분명히 읽기 전의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인데 읽고 난 후에 비교해보려니 쉽지가 않다. 간단하게라도 나는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한 번 정리해보고 들어가보길 추천한다.

 

 

1. 책을 읽게 된 계기 

 책 한 권 내내 윤리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을 읽어야겠다 싶던 차인데, 사실 이전에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을 좀 읽다가 읽기가 싫어서 내려놓았던 적이 있어서, 그 아쉬움을 대신하고자 이책을 고른 이유도 있다.

 그 책은 워낙 유명한 베스트셀러지만, '그래서 뭐가 답인지 말해주지도 않고 저자의 의견도 한발 뒤로 물러나 있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사례들을 끌어와 충격적인 전환을 이끌어내고 질문을 던지는 구조를 반복하는 느낌이라 읽다가 지쳐버렸던 기억이 난다. 

 (어리석게도) '이책은 답을 주려나?' 하는 기대로 골랐다.

그리고 궁금한 마음에 책을 살피려 서론을 읽고는, 머리를 얻어맞은 것 같아 얼른 이책을 읽기로 결정했다.

'윤리라는 것은 절대 변하지 않아. 나는 옳음과 그름을 잘 구별할 줄 알지!" 
 누군가가 "오늘 오후에 어떤 문제에 대해 윤리 심사를 하자"라 제안해도 우리가 크게 흥분하지 않는 이유가 이러한 확신때문이다. _ 13p

 윤리는 중요한 것이 맞다. 그런데 '답을 찾겠다는 호기로운 나의 자세'를 돌아보게 만드는 서론이었다.

나는 '윤리'를 중요하다고 여긴 나머지, 마치 이것은 변치 않는, 절대적인, 항상 옳은 무언가로 우리가 모두 따라야 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던 것이다.

 이제와서 돌아보니 이책은 확실히 주장하는 답이 있다. 저자의 의견도 명확하다. 또 수다스러운 사람을 만난 것처럼 느껴지는 무겁지 않은 책이었다. 초반에는 저자의 의견이 내 의견과 꽤 다른데도 불편하지 않게 그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내 의견을 간직할 수 있게 해주는 책이다. 아마도 따뜻함과 모두에 대한 애정이 담긴 책이라 그런 것 같다. 

+ 저자가 책의 뒷쪽에 모아둔 관련 사이트, 기사, 논문들 등 각주들도 꼼꼼하고 매우 방대했다. 몇 가지를 찾아보면서 본문을 읽다보니 시간이 생각보다 더 걸리는 책이었다.

보통 각주에 달린 숫자를 찾아가보면, 출처 기사나 논문 이름만 남겨져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책에서는 '이 논문들은 읽어보라.' ,' 여기서는 이런 내용이 나오는데..'는 저자의 친절하고도 수다스러운 문장이 들어있다.

함께 읽어볼 인터뷰 : https://ch.yes24.com/Article/View/50632

 

2. 흥미로운 문장과 생각

 

- 1장. 인간을 다시 설계하는 것은 옳은가? : 생명과학은 윤리를 어떻게 바꿔 놓을까?

 저자가 생명과학 분야에도 권위가 있는 분이라 사례 중에는 유전자 및 뇌 과학과 관한 사례들이 많이 등장한다. 어려울 수도 있는 첫 장이 재미있는 것은 과거와 현재의 윤리가 얼마나 다를 수 있는 지를 상황극처럼 보여주는 덕분이다.

할아버지나 할머니 (증조할아버지면 더욱 좋겠다.)를 모셔와서 시험관 아기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현재의 우리에게 시험관 시술은 난임을 위한 옳은 대안이다. 과연 할아버지는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할아버지 : 그래, 그렇구나...... 나도 그런 얘기는 오래 전에 교회에서 들어 알고 있다, 우리는 그걸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라 불렀지. 그건 기적이었어. _35p

  그렇다면, 이번에는 미래 세대가 우리를 불러내었다고 상상해보자. 2장에서는 실험실에서 생장시킨 고기가 더 저렴하고 더 일반적이된 미래를 예상한다. 

정육점 주인이거나 도살업자 혹은 축산업자였던 할아버지를 둔 가여운 아이는 신앞에서 이렇게 고백할지도 모른다.
"잔인했던 제 할아버지는....."

 

- 2장. 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것은 옳은가 中 : 기술은 곧 윤리적 변화를 이끄는 동력

 사회가 다수에게 안전 장치를 제공해야하는 것은 (현재 우리에게는) 명백히 옳은 것에 속한다. 

 희소성의 시대가 아닌 풍요의 시대에서 우리가 처한 문제는 '충분하게 생산하고 효율적으로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알맞게 분배하느냐'가 된다. 책에서 가져온 미국의 사례들을 보면 자원의 분배는 좋지 못한 정도가 아니라, 잔인할 정도로 끔찍하다. 

 여기서 저자는 불합리한 구조에 처한 현실에서 선택할 방법은 2가지 뿐이라고 정리한다. 사회 다수 구성원(이때, 다수 구성원이라는 의미는 엄청난 부를 형성한 부자들, 즉 사회의 소수 구성원을 제외한 이들을 의미했다.)이 기존 체제를 부수거나, 아니면 사회 속에서 보호를 받든가 하는 방법 둘 뿐이라는 것이다. 반론의 여지가 없지만, 낙수 이론의 설명을 들으면 씁쓸함이 더 커진다.

"낙수이론 : 부자가 떨어뜨린 부스러기를 주워 먹어야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에게 보다 더 많은 음식을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부스러기를 주워먹을 수 있다." _ 114p

 

- 3장. 어제의 세계는 지금도 옳은가 中 : 윤리는 변한다.

 2장에서 기술이 윤리를 바꾸고 있다는 의견과 근거를 논리적으로 서술했다면, 3장에서는 저자의 생각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무려 노예제도라는 절대적으로 옳지 않은 사례를 가져와서 말이다.

급히 골라 읽는 다거나 다시 읽을 때가 오면, 2장(기술이 윤리를 바꾸는 것은 옳은가), 3장(어제의 세계는 지금도 옳은가), 7장(그래서 결론은?), 1장(인간을 다시 설계하는 것은 옳은가?)을 읽으면 좋겠다.

3장은 노예제도가 옳다고 믿었던 이들에 대한 '기존의 우리들의 평가'와 달리 그리고 저자가 권하는 이해심있고 관대한 태도는 처음 읽을 때에 불편하게 느껴진다. (책을 지인에게 설명하자 '작가가 친일파야?'라고 되물었다.ㅎㅎ 미국 사회의 이야기들을 가져오기 때문에 우리나라와 일본에 관한 이야기는 없다.)

 불편함이 빠르게 가시지는 않았지만, 뒤를 이어 읽으면서 저자는 왜 이런 태도를 부탁하고 싶은 것인지 조금씩 이해가 가고 마음이 움직였다.

행동을 바꾸고 싶다면, 변화의 선두에 서고 싶다면 버려야할 태도가 있다. 경멸스러운 이들과는 두 번 다시 만나서나 대화하지 않겠다는, 혹은 그들에게 간결한 표현으로 모욕만 줄 뿐 말을 섞진 않겠다는 태도가 그것이다. _ 313p
한층 더 빨라진 글로벌 커뮤니케이션은 분노하고 각성한 상태의 '윤리적' 얼리어답터들을 결집시킨다.

(윤리적 얼리어답터라는 단어가 마음에 쏙 들었다.) 내가 성급한 윤리적 얼리어답터가 아니었길 바란다.

두 번째 가설: 이런저런 기술의 발전 덕에 보다 윤리적인 사람이 되는 게 쉬워진다면 어떨까?.....중략..... 다른 사람을 노례로 삼지 않고도 더 많은 생산량을 기록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이 끔찍한 관행을 포기할 것이다.

영국이 노예제도를 가장 먼저 폐지한 국가라는 사실은 그저 우연일까?

 기술이 윤리를 변화시킨다는 주장은 동의하고 싶다. 산업혁명과 노예제도 폐지를 연결한 가설이 설득력이 있었기도 했고, 값싸고 편리한 플라스틱이 전세계의 비난 속에서도 여전히 인기를 유지하는 이유를 연결하니 가설이 더 납득이 갔다.

 2장에서 부터 이어져온 기술의 동력은 강력했다. 우리에게 '옳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계몽이 일어나' 윤리적인 변화가 생긴 것이 아니라 기술이 발전하여 '더 값싸고 편리한 대안이 생겼을때', 윤리적인 변화가 촉진된다는 의견을 반박할 수 없었다.

 

- 6장. 당신의 '옳음'은 모두 틀렸다. : 과연 이게 옳은 것이 맞나 싶은 사례들

 기술이 갖춰야할 안전성, 위험성에 대한 내 생각을 돌아보게 만들었던 장이다.

기술이 더 나은 것이 되려면, 위험을 예방하는 노력과 안전을 보장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완벽히 안전한 기술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수 있을까? 

 FDA 소속 의사였던 존 네스터는 의약품 승인업무 담당자였다.

의약품이 승인 되기 전에는 반드시 안전이 입증되어야 한다.

반론의 여지가 없이 옳다.

이를 위해 네스터는 재임 기간 동안 단 1건의 의약품도 승인하지 않았다.

이게 더 옳은 행동인가?

 

- 7장. 그래서 결론은?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에 대해 일부 독자가 반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 책의 7장에서 '결론'이라는 소제목을 달고서, '도덕적 상대주의자'로 느껴지는 자신의 주장에 대해 설득력있는 마무리를 덧붙였다.

 조금 더 관대하고 조금 더 겸손한 태도로 (현재에는 변명의 여지도 없는 비윤리적인) 과거의 사람들 그리고 나와 의견이 다른 현재의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 우리 사회가 서로 대화하고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심지어 우리 중 가장 각성되고 옳은 이들조차 그 세대의 기대에 미치지 못하리라 깨닫는 것이 우리가 내디뎌야 할 첫 걸음이다. 기술은 강력한 촉매제치고 불가역적인 변화를 한 단계씩 높여간다. .... 우리의 토론에선, 또 서로를 대하는 우리의 방식에선 특정 시대의 법류이나 종교적인 잣대에 얽매이지 말자. 대신 수수함, 관대함, 공감, 공손함, 겸손함, 연민, 예의바름, 진실함 등의 여러 핵심원리를 가운데 놓고 판단하자. _316p
과거 세대가 했던 행동들을 비판하고자 할 땐 지금 진행되는 윤리적 차원의 여러 갈등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게 이치에 맞다.

내가 왜 이걸 당연한 것으로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걸까?
과거에 저질러진 잘못들에 대해선 그토록 분개하면서, 정작 지금 저질러지고 있는 온갖 윤리적 참사에 대해 나는 과연 어떤행동을 취하고 있는거지?

 저자는 따뜻한 눈으로 우리가 서로 다른 생각을 대하고 갈등을 해결해갈 방법을 제시했다.

'무엇이 옳은가'라는 책 제목에 아주 충실한 책이다. 책을 다 읽고 '아 그래서 이런 태도를 갖자는 거였구나.' 끄덕이면서 한번 더 작가의 따뜻한 얼굴을 보면서 책을 덮었다.

(또 저자는 책에서 다루지 못한, 자신이 모르는 사례가 있거나 다양한 생각들이 있다면 언제든 글을 자신에게 보내주기를 부탁했다. 진심으로 생각을 나누고자 하는 느낌이 들어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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