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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귄랜드/일상 후기

[3탄] 후각 상실 증상과 회복 기록 및 후유 장애

by 팡귄 2024. 1. 7.


후각 상실을 겪고 있거나 회복기에 돌입한 분들을 위해 포스팅을 쓴다.

지난 포스팅에서 후각 상실과 병원 방문기까지만 남겨 이후 결과가 궁금한 분들이 있거나 혹은 상실까지만 남겨서 영영 안돌아오는구나 속상해할 분들에게 희망이 되리라 믿는다.
1탄

세브란스 대학병원 후각검사 및 진료 검사 후기 및 방법 #후각상실

시작 전에. 대학병원에 방문하는 사람이 부모님이시라면 모시고 가는 걸 추천한다. 대학병원에 초진이라면 꼭! 필자는 매우 정신없었다. 그리고 대학병원은 후각검사를 받고 나의 현상태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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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탄] 세브란스 대학병원 후각검사 및 진료 검사 후기 및 방법 #후각상실

이전 포스팅은 아래 참고 https://pangguinland.tistory.com/288 세브란스 대학병원 후각검사 및 진료 검사 후기 및 방법 #후각상실 시작 전에. 대학병원에 방문하는 사람이 부모님이시라면 모시고 가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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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탄] 엔딩. 후각상실 이후 대학병원에서 외래 회송 처리 #회송 #후각치료

생각보다 내 글을 꼼꼼하게 읽고 도움을 받는 분들이 있어서 열흘 전 병원에 다녀온 이야기를 또 올리기로 했다. (이전 이야기는 아래 글 참고) https://pangguinland.tistory.com/302 [3탄] 후각 상실 증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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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후각 회복 일지

2. 이상한 냄새의 시작

3. 후각이 없을 때만 알 수 있는 것들

 

 

1. 후각 회복 일지


결론부터 남기면 2달이 지나 일상생활이 될 만큼 돌아왔으나 일상생활이 약간 불편이 될 후유증이 생겼다.

8월 1일 즈음에 후각이 사라졌고,
9월 1일 반짝 20퍼센트 강도로 후각이 돌아왔었다.
9월 2일 애석하게도 다시 후각이 사라졌다.
9월 13일 세브란스 병원 후각검사 결과 후각 저하 단계로 상실은 아니라는 희망을 얻었다.
9월 말부터 후각이 슬슬 돌아왔다.
그리고 드디어 10월 초부터 후각이 거의 온전히 돌아왔다.
후각이 매일 매일 새로운 냄새가 등장하는 식이 아니라 계단을 오르듯이 맡아지는 냄새의 강도가 점점 커지는 느낌으로 돌아왔다.
병원에서 일러준 것대로 마늘, 와사비와 같이 통각을 자극하는 강한 냄새 말고,
내가 좋아했던 향이나 기억이 꽤 또렷한 6가지의 향기를 매일 맡았다.
아침 저녁에 매일 하라고 했는데, 사실 2주차가 되면서 조금 지치기도 하고 까먹기도 해서 점점 한 번 거르기도 했지만 그래도 수시로 맡으려고 애썼다! (간장, 참기름, 향수, 오일, 커피원두, 식초)

 
 

2. 이상한 냄새의 시작

 

후각을 잃었다가 돌아오는 사람들 중에 나같은 증상을 겪는 사람이 있다고 한다.
기사를 검색해보니 전체 통계의 10%, 코로나로 후각을 잃었던 사람들 중 10%라는데 정확한 수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게 내 착각이 아니라 진짜 겪고 있는 중이라는 걸 알려준다.
후각이 온전히 돌아오고 있다고 행복해하던 10월 첫 주에 수박을 주문했다.

10월 6일 즈음이다. 수박을 먹는데 너무 이상한 냄새가 나서 힘들었다.
어떤 냄새냐면 도배할때 바르는 풀 냄새에서 시큼한 것을 뺀 느낌에다가 화장품 약간 섞고 물비린내(강가나 걸레 등에서 나는)를 섞은 냄새다. 
처음에는 수박이 상해서 그런 줄 알았다.
수박을 여름이 다 지나서 가을에 사먹는 사람이 얼마 있겠냐만은 여름내내 온전하게 먹어보지 못한게 아쉬워서 산 것이었다.
그 이후 오이에서도 같은 향이 났다. 그래서 주변에 오이냄새를 싫어하고 못먹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후각이 예민해졌거나 내 코가 뭔가 달려졌나 생각을 했더랬다.
그러나 참 당황스러운 건, 냄새가 나는 대상에 일관성이 없다는 거다.
화장품에서도 그 냄새가 남고 요거트나 우유에서도 그 냄새가 난다.
차가운 것에서는 대체적으로 그 향이 난다.
그리고  1~2주 간격으로 음식이나 화장품, 공간 등에서 생전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어느날 아침은 매일 바르는 선크림인데 나프탈렌을 능가하는 심한 파스향, 화학약품 냄새가 났다.
그리고 내 사랑 커피에서ㅠㅠ
커피에서 약간 김밥의 단무지와 채소 향 + 음식 쓰레기 같은 향이 난다.
이향을 표현할 방법이 없다. 토한 냄새라고 해야할지 싶다. 우선 김밥향에 가깝기는 하다.
카페에 들어서면 그향이 난다. 웃긴 건 따뜻한 음식에서도 종종 나고, 지나가는 자동차에서도 난다.

3번째 냄새는 파프리카향이다. 이건 가장 마지막에 등장한 녀석이다.
말이 좋아 파프리카지 풋 채소+파프리카+강한 비린내가 섞여있다.
얘는 파프리카에서도 나고 각종 채소, 또 특히 참깨에서 많이 느껴진다.

+ ( 참기름, 들기름 뿌린 음식이 아직도 힘들다. 참깨는 이제 안먹고 있다ㅠ 그 햄버거 빵의의 뿌려진 깨마저도 이제 도저히 못먹겠다. 참깨에서 그 역한 파프리카비린내가 제일 강하게 느껴진다. 요거트의 물비린내도 여전하다만 비교적 강도는 들쑥날쑥하다. 그냥 나는 이 냄새에 적응하고 있다. 2023년 2월 8일 추가)
 
이게 10월부터 지금까지 계속 된다. 이 향기는 맡아본 적도 없는 거라서 딱히 이걸 설명하기도 쉽지 않고, 또 꽤 거북한 냄새인데 막을 방법도 없어 조금 힘들었다.
또 당혹스러운 건 11월 말에는 살짝 사라졌다가 강도가 조금씩 올라오기도 하고 다시 사라지다가 나타나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
나도 이제 적응을 하면서 견뎌보거나, 이 냄새가 옅어진 날 행복하게 요거트를 즐기고 있다.

그저께 수박을 먹었는데 수박에서 2달전의 이상한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어떤 연구에서는 여러 의견을 제시하는데,
첫째, 후각 신경 세포의 문제가 생긴 경우,
둘째, 뇌에 문제가 생긴 경우 등을 제시하는데,
그중에 눈길을 끌었던 연구는 코로나 후 후각을 회복했던 환자들이 이전에 즉,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지 못하는 특정 화합물의 냄새를 공통적으로 맡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현재 나는 
더이상 새로운 냄새가 등장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돌아온 냄새들을 열심히 즐기고 있다.
참, 그래도 모든 냄새가 돌아왔지만 이상한 냄새도 나타났기 때문에 습관적으로 다른 사람과 내가 맡는 냄새를 계속 비교해보고는 했다. 
궁금한 것은
이게 언제까지 지속될까 하는 것이다. 뭐 적응의 동물이라고 이상한 냄새도 이제 좀 버틸 수 있다. 외국의 한 여성은 사방에서 악취가 난다고 하는데 그에 비하면 양반이지 싶다.
 
 

3. 후각이 없을 때만 알 수 있는 것들

 
 병원에서는 후각신경세포는 유일하게 재생이 가능한 신경세포이며 젊다고 안심하지 말고 재활훈련을 계속 하라, 1년 정도 길게 내다보고 훈련을 하라고 하였다.
이게 당시 꽤나 심적으로 많이 의지되고 감사했다.
물론 극 T성향인 지인은 그말인 즉슨 '약도 없고 병명도 애매한 난치병'이라는 말 아니냐고 했지만!!!
대학병원의 재활훈련 처방과 그리고 병원에 가득했던 동병상련의  환자들을 보면서 꽤 위로가 되었다.
후각상실로 우울증을 겪는 사람들이 꽤 있다하는데 반면, 후각상실이 뭐 생활에 그렇게까지 불편을 주냐며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시각이나 청각만큼 불편함을 주지 않지만 겪어본 바 꽤  힘들다.



첫째, 하루 종일 꿈을 꾸는 기분.
 말이 좋아 꿈을 꾸는 기분이다.
자고 일어난 침대에서 느끼는 향과 매연 가득한 도로, 지하철 출근길이 모두 같은 냄새다. 냄새가 없단 말이다. 생각보다 공간을 지각하는데에 냄새가 꽤 큰 역할을 한다. 그러나 현관문을 나서서 길에서 어디서도 냄새가 없다. 어딘가에 들어섰다라는 기분이 없다.

둘째, 시간을 못 느낀다.
 음식을 준비하는 것은 보통 재료 손질부터 시작한다. 채소의 풋내부터 냉장고 냄새와 조미료들의 냄새를 맡는 과정, 끓여지면서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찌개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슬슬 완성이 되었다는 느낌이 온다.
프린터가 나올 때도 특유의 냄새가 있다.
커피를 내리는 과정에서 원두가 갈리는 특유의 향이 있다. 내릴때 올라오는 향은 또 다르다.

이런 순간이 하나도 없다. 찌개가 바글바글 끓는데 나에게 유튜브로 음식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다. 아무 냄새가 없다. 색깔과 호박의 무른정도랑 맛으로 완성을 느낀다. 냄새없는 된장은 엄청 짠 소금 같았다.

셋째, 음식에서 향기는 반을 차지하는구나.
그동안 향은 인공적인 혹은 맛을 약간 돕는 역할인 줄 알았더니. 정말 아니었다.

치킨조차 맛이 없다.
음식의 채소, 달콤한 과일, 향긋함, 기름의 고소함들이 음식의 반을 차지하는 것 같다. 이걸 평생 다시 만날 일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너무 우울했다.

라임향 못 느끼던 당시 먹었던 하이볼!


넷째, 기억과 아쉬움
기억과 관련한 아쉬움은 여러 가지이다.
1) 스쳐가는 냄새에서 옛 기억이 떠오르는 일이 앞으로 없을거라는 점이 많이 아쉬웠다. 그런거 다들 있을 거다. 여름 오후의 냄새나, 비오는 길의 냄새, 혹은 어떤 냄새를 맡았는데 어릴적이 떠오른다거나 말이다.
내 인생에서 그런 입력신호는 절대 없겠구나 싶고 그럼 회상능력도 떨어지려나 별 생각도 해봤다.
2) 그리고

 

딸기 우유.!
 딸기 우유를 극진하게 좋아하지도 않고 몇년에 한번 먹는 정도이기는 하다만 상큼한 딸기를 상상하면서 딸기우유를 샀던 날이 있다. 이날 꽤나 오랜만에 마시는 딸기우유라 기대하였다가 분홍색 설탕 우유를 마시며 속상했던 순간이 있다. 얼마나 서운하던지. 앞으로 딸기 우유 바나나 우유 초코 우유 이런거는 없겠구나 슬펐다.
파스타에서 올리브향도 안나고 트러플향도 없는 피자까지 차라리 몰랐다면 좋은데 아무리 애를 써도 그 향을 맡을 수 없을 것이라는게 속상했다.
기억만 남았으니 말이다. 차라리 몰랐다면 좋았을 그리운 향들이 떠올랐다.
의사선생님이 계속 그 향을 기억하라고 하는데, 점점 그 향이 뭔지 잊을까봐 그것도 속상했다.
 
여튼 그렇게 다채로웠던 시간들이 지나고 1월이 되었다.
8월부터 해를 바꾸어 1월이 된 지금은 일단 그 이상한 향은 강도는 줄었지만 계속 되고 있다. 파프리카향이 요즘은 나에게 대세다. ㅎ 약간 시즌이 있다고 보인다. 이제 김밥쓰레기냄새는 좀 줄었고 풀비린내가 2등 파프리카향이 1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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