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여름, 대학로 맛집이라는 블로그 소개글을 읽고, 친구와 약속을 잡고 유명하다는 식당을 찾아간 적이 있다.
나는 기대를 안고 친구와 함께 그 식당이 있는 건물로 향했다.
그리고 식당이 있는 층에 도착해 엘리베이터가 열린 순간, 내 온몸에는 소름이 돋았다.
아마 옆에 있던 친구도 놀랐겠지만, 나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놀랐다.
그식당은 문을 닫기 전 풍경을 그대로 간직한 채 소복한 먼지가 쌓여 있었고, 그 모습은 엘리베이터가 열리면 음식점 전체를 바로 들여다 볼 수 있는 구조라 낡고 먼지투성이인채로 매우 적나라하게 펼쳐져 있었다.
블로그에서 호들갑을 떨며 얼마나 맛있는 집인지 이야기하는 글 속의 식당 사진들이 지금의 먼지쌓인 식당 위에 고스란히 오버랩되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그 순간 느낌이 왔지만, 나는 친구에게 사과하며 다른 식당으로 향하는 길에 내 생각이 맞는지 그 포스팅을 찾아 다시 읽어보았다.
맞았다. 그글은 3년 전 글이었다.
다만 내가 방문한 여름처럼 그해 여름에 쓰여진 글이었다.
3년새 포스팅에 붙은 이모티콘이나 말투는 크게 변하지 않았고, 식당이나 손님들의 옷차림새의 유행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인터넷 페이지 상의 글이 종이처럼 페이지 끝이 닳았다거나 사진들의 색이 바라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냥 어제의 글 같았다.
그러나 3년이 흐르면서 그 식당은 그 사진 속의 모습을 간직한 채 문을 닫았다.
사실 다른 식당으로 향하는 내내 나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던 순간이 머리 속에서 잊혀지지 않았다. 이후 나는 다른 모임에서 ‘온라인 상 개인정보와 잊힐 권리’ 이야기하며 이 일화를 이야기하고는 한다.
그리고 그 이후 인터넷의 글을 확인할 때마다 날짜를 반드시 확인하고, 지도앱에서 한번은 그 식당이 실재하는지 찾고는 한다. 아직도 소름이 끼쳤던 순간은 잊을 수 없다.
‘누군가는 식당이 문을 닫았네, 뭐 별거야?’ 하겠지만, 나에게는 그날의 기억이 참 강렬하게 남았다.
포스팅의 바글바글한 사람들 사진들을 세심히 보며 신중히 고른 식당이 었고, 나는 그 3년전의 활기가 돋았던 식당을 마음에 품고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기 때문이다.
전날 밤까지 보았던 식당이 바로 다음 날 뽀얀 먼지 아래 생기조차 없는 스산한 식당이 되어 오버랩되는 순간에 나는 인터넷에 기록된 것들, 낡지 않고 사라지지 않는 그 인터넷 속의 활기가 부자연스러워 소름이 끼쳤던 것이다.
이따금 인터넷에 떠도는 글에서 내 생각보다 오래 된 글을 만날 때마다 그 철렁이었던 순간을 떠올린다.
그리고 최근 챗 GPT의 인기로 인해, 다시 한 번 인공지능 기술로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재미에 빠진 사람들이 많다. 챗 GPT에 열광하며 놀라운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들도 많고, 상업적인 용도로 연결할 가능성, 투자 가능성을 내다보는 사람들도 많다.
반면, 챗 GPT에 회의적인 이들도 많다. 조금만 사용해보아도 느껴지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글의 문법적인 완성도는 감동적이지만, 글의 내용에 대한 신뢰성은 어느 순간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훈민정음을 스님이 만들었다고 한다던지.
그러나 그렇게 눈에 두드러지는 오류말고, 서서히 우리에게 불편함을 주는 이유는 따로 있다.
오류를 알아차리지 못할만한 그럴싸한 글이라도 이 글은 언제, 어디에서 어떤 자료를 바탕으로 완성되었는지 조금도 알기 어렵기 때문이다.
우리의 질문에 성실히 답하며 글을 써내려가는 챗 GPT지만 점점 불편한 마음이 든다.
아무리 낡지 않는 종이인 인터넷 페이지에 쓰여진 글에서도 우리는 글이 올라온 날짜, 글을 쓴 사람, 글쓴이가 이 웹사이트에서 주로 다루었던 분야, 남겨져있는 출처 등을 함께 살피며 글의 신뢰성을 가늠해본다.
그러나 생성 AI가 만들어낸 글들은 도무지 우리에게 추측할 단서를 제공하지 않는다.
몇몇 유튜브에서는 블로그 글감의 아이디어를 얻거나, 글을 작성하게 시켜서 수익을 자동화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올린다. 그러나 신뢰성이 없는 글을 언제까지 이용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심 이것으로 자동화하여 쓰여진 글들이 범람한다면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 기술에 덜 개방적인 인간이라서 챗 GPT의 가치를 모르는 건가?
반면 생성 AI의 오류나 출처를 알 수 없는 그럴듯함이 예술 분야에서는 조금 더 빛을 발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서 요즘 다시 달리로 들어가 이미지를 합성해보고 있다. 약간의 오류도 그림에서는 낯설음의 아름다움으로 숨어버리는 것 같다.
아이구,
DALL·E 달리에서 좀 더 멋진 그림을 합성하는 방법이란 포스팅을 쓰려다가 산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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