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책을 추천해준 너구리씨에게 감사드린다. 모처럼 지하철에서 서서 읽으면서도 정신이 쏙 빨려드는 책이었다. 너무 재밌어서 '책만 있으면 인생이 충분히 재밌겠네.'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책에 대한 서평을 보면 많은 경우가 우생학자로 비판받아야할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과 행동, 우리가 가지는 사고방식의 편협함과 위험성, 분류가 만드는 차별, 그리고 저자가 깨달은 삶의 질서와 따뜻한 시각을 말한다.
이것들은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책에서 이 부분보다 더 크게 와닿은 것이 있다.
[2장 "어느 섬의 선지자"] 이부분 때문이다.
나는 이부분을 읽다가 엉엉 울고 말았다.
아마도 끊어읽어서 그런 것 같다. 다른 책들도 섞어 읽다보니 이책을 3주에 걸쳐 읽었는데, 읽는 날마다 끊긴 구역이 돌아보니 기가 막혔다. 이책은 나에게는 3가지 단편을 엮은 옴니버스 소설로 기억될 것 같다.
첫째로 [2장 어느 섬의 선지자]를 읽고 나는 굉장한 감격에 젖어 있었다. 데이비드가 그의 인생에서 꿈꾸었던 것들을 섬에서 맞이하는 그 순간이 감격스러워 읽는 내가 다 행복했다. 1장부터 데이비드의 젊은 시절 이야기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다른 책을 읽으면서 잠시 이책을 덮어둔 덕분에 이 감동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었다.
둘째로 [7장 파괴되지 않는 것]에서 저자와 함께 그가 무참히 깨진 유리병을 이겨내는 방법을 열심히 찾았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앞서 그와 감격스러운 순감을 함께 했기에 그가 안쓰러우면서도 그 단호한 행동에 대해 경외감에 젖어 그의 방법을 좇았다. 그리고 룰루 밀러의 삶에 대한 이야기에도 내발을 담그기 시작했다.
셋째로 [8장 기만에 대하여] 부터 다른 책을 펼친 것처럼 데이비드의 자기 기만에 대한 내용과 반전이 시작되었다. 내가 앞서 간직했던 행복과 감격은 비참하게도 와장창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대단한 인물도 별 수 없던 것인가. 8장 이후의 이야기는 생각보다 매우 부피가 큰 이야기였고, 책의 끝에 다다랐다고 생각했으나 저자가 전하는 핵심은 뒤에 꽉 차 있었다. 칭찬하자면 끝까지 흡입력 있는 책이었다.
책을 덮었는데도 나는 2장만 기억에 남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어릴적 이야기와 성장, 그리고 끝내 아가시가 연 여름 캠프 안내를 발견해서, 그 섬에 도착하기까지. 여기까지말이다. 나는 이책에서 이 부분에 대한 기억이 더 크게 남는다.
사실 여기서 책을 덮고 한 숨을 쉬어갔다.
그러다가 뒤에서 이어지는 책의 반전을 읽으며 내가 끝까지 안 읽었으면 아주 큰일날 뻔 했다고 생각했다.
독살이라니!
그러나 이제 돌아와보면 여기서 차라리 2장까지만 읽고 책을 덮었어도 그런데로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따라가는 과정은 참 간단치가 않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무언가를 따라가는 과정이 험난하기도 하고, 존중받거나 응원받지 못할 수도 있다. 공감조차 받기 어려울지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제멋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결국에는 그렇다는 말이다. 한번 접었던 종이는 아무리 잘 맞추어 반대로 접어도 원래대로 안돌아오는데, 그런 느낌으로 말이다. 내가 가고 싶은 방향을 미세하게 나마 가리키며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반대로 꺾어도 그렇다.
그러니 정말 꿈꿔왔던 것을 마주 하는 순간이 얼마나 벅차겠는가. 그리고 그걸 중요한 게 맞다고 공감해주는 사람이 가득한 섬에서 데이비드는 얼마나 벅차올랐을까? 그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데이비드가 부럽기보다는 읽는 나도 그 순간이 상상되어 눈물이 펑펑 나고 말았다. 얼마나 좋았을까?
이번에도 이 책은 내가 잘못 오해한 책으로 남을 것 같다. 오해했다는 것은 아마 이런 이야기를 간절히 듣고 싶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오해하는 책이 때로는 더 좋은 것 같다.
(책을 읽을 이 무렵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모두가 제멋에 겨워 사는구나.' 천안삼거리라는 민요에 이런 가사가 나온다. '제멋에 겨워 흥~' 뜬금없지만 딱 저 노래의 곡조에 따라 불러지는 저 문장으로 모든 생각이 정리되곤 했다. 그래 누가 뭐라해도, 아무리 잡아당겨도, 모든 사람은 자기 멋대로 살아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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