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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 대학원/논문 책 리뷰

[책] PIG05049 : 3년 간의 추적 , 물건낯설게 보기

by 팡귄 2024. 4. 2.

다음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사포, 담배, 도자기, 와인, 치즈케이크, 개껌
힌트를 더하자면
종이, 기차 브레이크, 성냥, 엑스레이필름, 맥주도 있다.
 

위에서 말한 모든 것들에는 돼지로부터 얻은 원료가 들어간다.
우연히 집어든 책인데 참 재미있었다.

이책을 집은 까닭은 책 제목이 있어야할 곳에 노란 플라스틱이 눈을 끌었기 때문이다.
'이런 디자인은 제작도 어렵고 유통도 어려울텐데 신기하네' 하면서 책을 집었다.

자세히 보니 노란 것은 돼지의 귀에 다는 인식표였다. 이 책에서 일생을 따라간 돼지의 이름표다.
저자(Christien Meindertsma)는 농장에서 '05049'라는 이름..을 가진 돼지가 도축된 이후 어디로 가서 어떻게 쓰이는 지 3년간 추적했으며, 그결과 185가지의 다양한 제품에 이 돼지가 사용되었음을 찾아낸다.
https://christienmeindertsma.com/PIG-05049
 
 이책은 서문 3~4쪽과 마지막 장의 1~2쪽에 저자의 말이 담겨 있다. 즉, 글의 양은 매우 적다. 대신 명시적이고 간략하게 돼지의 쓰임들을 사진으로 전한다.
 사진을 크게 실은 이유를 생각해보자. 우리가 보통 물건의 원료를 떠올릴때 무엇을 바탕으로 떠올릴까? 음식이라면 맛을 볼 수 있지만, 대부분의 물건은 만져보고 눈으로 보거나, 두들겨 보고 단단하기나 울리는 소리를 들어보는 등의 노력을 해볼 수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이는 색과 형, 예상되는 질감이나 단단하기를 책에 전부 실기는 어려웠겠지만, 페이지마다 큰 사진이 실려있어서 원료를 떠올려보는 평소의 노력을 시도해보도록 도와준다. 사진을 크게 실은 것이 마음에 든다.

출처 : https://blog.naver.com/hierieta/222882295639
출처 : https://blog.naver.com/hierieta/222882295639  일본에서 이 책을 낱장으로 뜯어 전시하였던 모양이다.

 
 꼼꼼한 저자는 첫장부터 1마리의 돼지에서 얻어지는 것들을 부위별로 나누고, 그 부위가 어디에 쓰이는지 추적하여 정리해놓았다.
이책의 인상적인 구성은, 1마리의 돼지를 기준으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돼지 103.7kg 1마리에서 나오는 피부나 뼈는 얼마정도 될까?
 원그래프를 그려 간단히 표현해주는데, 고기의 비중이 제일 크고, 생각보다 혈액의 양이 많다. 피부는 3kg, 뼈는15.2kg, 고기 54kg, 내부 장기 14.1kg, 피 5.5kg, 지방 5.4kg, 기타6.5kg이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수치다. 생각보다 조금인 것도 있고, 생각보다 많은 것도 있다.

그리고 저자는 1마리라는 낯선 기준에 더해 '05049'라는 인식번호를 부여받은 특정한 돼지를 추적하기 시작한다.
만약, 이책이 단순하게 돼지의 쓰임을 나열했다면, 185가지라는 다양한 쓰임에 여전히 놀라기는 했겠지만 ‘생각보다 다양하구나.’에 그쳤을 것이다. 그런데 05049라는 이름을 가졌을 돼지가 여기에도, 저기에도 들어가 있다는 상상이 되니 느낌이 특이했다.
돼지가 비교적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곳에 쓰이며 '원래의 형태를 온전히 가지고 가는 경우'도 있지만, 굉장히 다른 모습으로 변해 쓰이는 경우도 있었다.

 

원래의 형태를 온전히 갖고 있음에도 쓰임에 놀랐던 것들

 

1. 타투 연습용 피부

타투이스트들의 연습을 위해 사람과 흡사한 돼지의 피부가 쓰인다는 사실. 전혀 몰랐던 점이라 인상적이다.
 

2. 화학 무기 테스트

chemical weapon testing 이라 설명하는데, 검색하여 보니 화장품의 흡수력 테스트에도 여전히 쓰이고 있으며, 심지어 칼날의 각도를 예측하기 위한 부검 참고 자료로도 쓰이고 있었다. 돼지의 피부에 여러 방향으로 칼자국을 내어 보는 것이다. 검색을 해보다가 기겁을 했다...;
 

3. 심장 판막

돼지 장기가 쓰이고 있다는 것을 알기는 했지만, 판막은 몰랐다. 사람의 몸에 이식하면 다시 제역할을 다한다고 한다.

 

원래의 형태를 갖고 있지 않아 너무 놀랐던 것들. 너무 많다.

 

 우리가 기껏해야, 고기, 기름, 가죽으로 돼지의 쓰임을 생각하고 있지만, 돼지로부터 얻은 것들은 생각보다 우리 일상의 물건과 음식 곳곳에 들어있다.
 돼지 털 속 단백질은 도우 반죽 촉진제, 돼지의 젤라틴은 푸딩, 케이크는 물론 맥주나 와인의 불순물을 걸러내는 데에 쓰인다. 뼛가루는 도자기와 본드 재료로 쓰이고 있다. 사포와 홀로그램 종이에도 돼지로부터 얻은 물질이 들어간다.
 책의 끝에서 저자는 복잡한 생산 과정을 거치며 일반 소비자들은 '주변의 물건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 단서가 없다.'라고 말한다. '이거 뭐로 만든 거지?'하면서 만져보거나 들어올려서 구석구석을 살피는 건 어쩌면 택도 없는 방법인지 모른다.
 그리고 이런식으로 돼지가 도축되어 쓰이는 곳이 다양하다면 과연 비건을 실천하는 이들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3년 간 05049라는 돼지의 일생을 추적해준 저자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 놀라운 발견이었고 새삼 내 주변의 물건을 다르게 보게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은 2010년 테드 컨퍼런스에서 이미 공개되었던 책으로, 책 자체는 오래되었다. 아마 그 이후로 돼지의 쓰임이 더 늘지 않았을까? 줄어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 저자는 네덜란드 사람으로 네덜란드에서는 들판에서 널부러진 소를 흔히 볼 수 있는 것에 비해, 돼지는 보이지도 않는다는 점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 나라의 돼지가 1200만마리나 되는데 이 돼지들은 어디에 있나하는 궁금증을 바탕으로 책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렇게나 보기 힘든 돼지들은 트럭에 실려 도축장으로 가는 때에 길거리로 나온다. 차를 타고 운전하는 사람들은 비로소 그때 돼지들을 조우하게 되는데, 이순간이 바로 생산자와 수요자가 만나는 유일한 순간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그런데 저자가 말하는 생산자는 돼지를 싣고 도축장으로 향하는 주인을 말하는 건지, 아니면 돼지를 말하는 건지 궁금하다. 내생각에는 생산자는 돼지가 되어야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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