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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귄랜드

여름 감기 후 후각 상실 기록 2주차

by 팡귄 2023. 8. 17.

여름 감기 후 후각 상실 기록

 

 코로나도 다 피해간 나는 7월 말에 2주에 걸쳐 감기에 걸렸다.
목감기를 시작으로 목소리가 잘 안나오는 지경이 되어서 이비인후과를 찾았다. (필자는 병원에 잘 안 가는 성격이다 ㅎ) 감기는 거의 겪는 편이 아닌데, 올해 들어 힘든 일이 좀 많아서 그런지 비염도 처음 겪었고 감기도 붙어서는 떨어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아직은 후각이 회복이 안되었지만, 2주간의 과정을 기록해본다.

참고로 병원 후기는 다른 포스팅으로 올렸다.
[1탄] 세브란스 대학병원 후각검사 및 진료 검사 후기 및 방법 #후각상실 - https://pangguinland.tistory.com/m/288

[1탄] 세브란스 대학병원 후각검사 및 진료 검사 후기 및 방법 #후각상실

시작 전에. 대학병원에 방문하는 사람이 부모님이시라면 모시고 가는 걸 추천한다. 대학병원에 초진이라면 꼭! 필자는 매우 정신없었다. 그리고 대학병원은 후각검사를 받고 나의 현상태를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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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8 목감기만 1주일째라 코로나 검사를 하였으나 결과는 음성. 목감기 약을 3일치 받아옴.
 
8/1 목감기는 낫고 코감기가 시작됨. 가래나 말하는 게 불편한 것은 사라졌는데 코가 계속 막힘. 이틀 뒤 해외여행이 예정되어 있어 약을 일주일치 받고, 주사도 맞음. 약을 독하게 지어주심. 약을 너무 오래 먹는 것 같아 스스로가 안쓰러웠음.
 
8/2 해외여행으로 장시간 건조한 비행기와 추운 공항에서 경유 4시간을 버팀. 잠을 못 자서 상태가 안좋아짐. 
 
8/3 도착해서 두통이 엄청 났음. 잠을 못자서 그런 것 같았음. 코로나는 아닌 것 같았음. 코감기는 다 나음. 약도 안 먹기 시작했는데, 뭔가 이상함을 깨달음. 모든 냄새가 사라짐.
 점심에 초코우유를 먹었는데 오로지 단맛만 남. 하필이면 후각이 사라진 때에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익숙한 음식이 없어 처음에는 이상함을 감지 못함. 그냥 '이나라는 초코우유를 너무 건강하게 만드는 군!' 하면서 남겨버림.
 점심을 허술하게 먹어서 숙소에 들어가 컵라면을 먹는데 뜨거운 김만 느껴짐. 피곤해서 입맛이 없나 했으나 맛은 나는데 아무 냄새가 없음. '말로만 듣던 후각 상실인가?' 철렁하여 김치에 코를 박고 킁킁거려봄. 아무 냄새가 안남. 치약도, 커피도 아무 향이 없음. 가족들에게 겁이 나서 알림.
 
8/4 자꾸 이상한 악취까지는 아니고, 안 좋은 냄새가 속에서 느껴짐. 아무 냄새는 못 맡는데 역한 냄새만 올라와서 여행 중에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음. 후각 훈련이라던가 휴식을 취하는 것이 여행 내내 불가능했음.
 
8/6 이상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이 사라지고 세상이 무향이 되버림. 산공기, 커피향, 쌀국수 향, 로션, 치약 모든 향이 사라짐. 치약은 약품 특유의 이상한 맛(?)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됨. 향이 필요한 이유를 절실히 깨달음.
 
8/11 저녁 비행기로 귀국함. 감기는 심하지 않아서, 처방받았던 약은 거의 다 남았으나, 전혀 후각이 돌아오지 않음. 
 
8/12 문 열자마자 병원으로 감. 후각이 사라지는 증상을 말함.
- 코로나 검사를 다시 함. 역시나 또 음성.
- 코속이 현재 조금 부어있고, 비염 증상일 수 있으므로 먹는 약, 뿌리는 약과 스테로이드를 함께 처방 받음.

약을 바꿔가면서 2주 넘게 먹고 있으니 서글프고 우울했음.

후각이 사라진지 10일이나 지나가는 때에 드디어 <후각 훈련 시작>

 집에 가서 '코로나로 후각을 잃었다가 2주만에 회복한 친구'에게 후각 훈련 조언을 들음. 친구는 비교적 일찍 돌아온 편인데, 유자청과 김치 냄새를 매일 맡아보면서 연습했다고 함.

 후각은 신경세포 중 재생이 가능하다고 하고, 후각 장애를 겪는 경우에 다양한 향을 맡는 연습을 꾸준히 하여서 재활하는 훈련을 한다고 함. 그래서 김치, 2배 식초, 매실청, 향수, 국간장을 꺼내봄.

그러나 절망적이게도 전혀 아무 향이 안 나고 구분도 안됨...ㅠㅠ

2배 식초는 워낙 세서 코에 약간 통증이 느껴지는데 시큼한 향은 죽어도 안남. 
김치는 매운 향이 느껴지는 것도 같았으나 냉기를 향기로 착각한 것 같아 상온에 두고 연습하기로 함. 
국간장, 매실청, 향수 역시 택도 없음.
우울함이 엄습해왔으나 잊어봄. 
 
8/13 후각 훈련을 반복함. 아무 차도는 없음. 약을 꾸준히 먹고 뿌리는 약도 잘 지켰음.
 
8/14 내일이 광복절인데 약도 떨어지고, 차도는 없어 병원을 재방문함.
- 약을 같은 것으로 지어주겠다. 일단 코 속의 염증은 거의 없는 상태다..
- 시간이 해결해주는 부분인데, 마음이 불안하다면 대학병원을 가봐도 좋다. 다만 거기서 해주는 것도 비슷할 거다. 하시면서 소견서도 한통 써주심.
 대학병원 이야기에 더욱 우울해짐. 인터넷에서 폭풍검색을 하였으나 6개월이 걸린 사람, 2주가 걸린 사람, 1년 걸린 사람 등 너무나 다양하여 희망을 갖기가 더욱 힘들어져 검색을 관두기로함.
그나마 미각은 살아있고 먹성이 좋아 잘 먹는데, 맛은 그대로 여서 예전처럼 먹는 즐거움이 조금 줄어듦.
향이 음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대단한지 절감함.
가령,
딸기 요거트, 복숭아 요거트, 바닐라 요거트는 나에게 모두 같은 맛임. = 달콤한 요거트
각종 음료수는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이랑 먹은 파스타에서 올리브 향이 좋다는 데 알 수가 없음.
 
 음식점 가서 당분간 모히또 같은 비싼(?) 음료 안 시키고 그냥 사이다를 시키기로 다짐함... 민트고 라임이고 향이 없으니 단 얼음물이었음. 아메리카노 역시 향은 없으나 먹성이 좋아 먹을 수 있음. 의외로 쓰고 고소한 맛이 있다는 사실!

제아무리 정성들여 만든 모히또라 하여도 나에게는 달달한 얼음물이다

 
8/16 매일 훈련을 하는데, 어제부터 생마늘을 추가해봄.
 착각일까 싶은데 알싸한 향이 스쳐감. 최근 읽은 책에서 우리의 뇌 피질은 특정 감각의 입력이 줄면 다른 감각의 영역이 범위를 넓혀 차지한다고 함. 가령 시각을 잃으면 그 부위를 촉각, 청각 등이 차지하는 식.ㄷㄷㄷ
그래서 약간 두려워지기 시작함. 내가 후각을 사용하지 않을 수록 점점 더 회복이 어려워질 것이라는..ㅠ
 

8/17 불쌍한 나는 딸기우유를 사는 실수를 함.

 상큼한 딸기 맛을 상상했던 나는 설탕맛우유를 마시게 됨.
후각상실을 잊어버렸던 내 자신이 안쓰러움. 바보같이 딸기우유를 고른 나를 불쌍하게 여기면서 낮잠을 자봄.
 마늘 향이 오늘도 살짝 스치는 것 같음. 분명히 마늘이 내 코 앞에 있을 때랑 없을 때랑 공기의 미세한 차이가 있음.

희망을 걸어봄.
역시 한국인은 마늘!
후각이 사라진 세상도 경험하기 쉽지 않은 것이니!

음식을 먹을 때마다 오로지 맛만 탐구하면서! 나의 미각을 극대화해보자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이 기다림을 이겨내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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